2016.07.02


빅토르 최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만 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짧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냈고, 그의 묘지도 이 도시에 있다. 솔직히 이 마계 러시아에서 말도 안 통하면서 공동묘지를 찾아간다니 좀 난이도가 있는 일정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어차피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온 여행이기도 하고, 언제 러시아에 또 올지 알 수가 없는데 싶어서 그냥 가보기로 했다. 하하.



그의 묘지는 위의 동그라미 친 부분에 있다. 왼쪽 아래에 별이 모여 있는 곳이 넵스키 대로와 주변 관광지이고, 그 중 좀 위에 있는 별이 방금 간 정치사박물관과 '밥집'이다. 이 여행 내내 관광지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 때만큼은 교외로 나간 것이다. 공동묘지인데 관광지 바로 옆에 있길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이 아주 느린 마을버스 같은 걸로도 20분 하니까 도착했다. 지하철 역을 따져봐도 관광지에서 서너역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지는 완전히 모여 있다. 


빅토르 최의 키노 활동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뤄졌다. 그의 노래 중에는 '난 모스크바란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Мне не нравится город Москва)'란 제목의 노래도 있다. 그의 노래 중 거의 유일하게 구체적인 지명이나 시대가 언급된 노래이다.


Like it or not, but I don't like Moscow city
I like Leningrad
We are fruits that have grown up earlier
And it means that we will be eaten earlier

I like when I have something to eat
I like when I have something to drink
I'm full of my own juice
Would you like to eat me?


해당 가사의 영어 번역이다. 출처는 여기.

빅토르 최의 가사에는 그 시대를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상징하는 내용이 많은데, 저 가사의 "우리는 더 빨리 익어버린 과일이다 / 그러니 우린 더 빨리 먹혀버리겠지" 이런 부분이 그렇다. 소련 붕괴 이후 정신없이 밀려들어온 자본주의에 '먹혀버린' 90년대의 러시아 록, 그리고 어쩌면 그 때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 같이 들리네, 라고 혼자 멋대로 상상해 본다. 물론 러시아 록이 완전히 먹혀버렸다거나 패배한 것은 아니었지만.

궁금한 것은... 왜 모스크바가 싫고 레닌그라드가 좋은 것일까? 러시아인들의 지리적 심상에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잘은 모르지만 두 개의 상호대립하는 상징 같다. 모스크바가 이걸 상징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저걸 상징하고 이런 식으로(디비피아에 이 주제에 대한 논문도 있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어쩐지 모스크바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위의 가사에서도 보면 모스크바가 싫고 그 대신 좋은 것은 레닌그라드인 것이다. 그 두 도시가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노래에서는 맨 처음의 저 한 마디만 있고 직접적으로 왜 싫은지에 대한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가 본 한국 방송인들이 있다.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제작진이다. 러시아 탐방의 일환으로 여기도 가 본 것 같다. 오늘 내가 가서 볼 것도 아래 영상의 내용과 동일하지만, 온 김에 직접 한 번 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게 안내 영상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아래 영상은 해당 제작진이 소치의 거리에서 취재한 길거리 음악가로, 빅토르 최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상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좋고 연주도 잘 하는데, 저 사람 엄청나게 취해 있다. 도대체 몇 시인진 알 수 없지만, 해가 저렇게 밝은데 눈이 저렇게 풀려서 길거리에서 연주를...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니까 여름의 백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술 취한 러시아 남자는 피해야 할 대상 1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런 사람을 봤으면 빅토르 최의 노래라고 해도 피해갔을 것 같다. 거기다 저 옆에서 괴상한 춤을 추는 여자는 대체...... 저것도 길거리 음악의 일환인 건가......

해당 영상의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까레이스키(고려인을 의미한 것인 듯)라거나 이런 부분을 보면 제작진이 빅토르 최나 재러 동포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빅토르 최는 재러 동포 즉 고려인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기가 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단 혈통상 그는 반만 고려인이고 반은 러시아인이다. 빅토르 최의 아버지는 한국계 러시아인이 맞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자꾸 그가 고려인이라고 하는 건 부계 혈통만 지나치게 쳐 주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쓴 어느 가사에서도 고려인의 정체성, 소수인종 문제, 한국 혈통 이런 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소수자 문학을 읽을 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게 되는 '러시아에서 내가 이런 소수자로서 살면서 정체성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그의 가사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러시아어 자료를 앞으로 많이 읽다 보면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인터뷰 등에서 말할 때도 러시아인/소련인으로서 말하지, 한국계 러시아인으로서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러시아포커스 같은 매체에도 그가 한 인터뷰나 생각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고,  블로그에도 한국어 자료가 많으니 참고가 된다.

아버지가 한국계였다고 하지만 한반도에서 막 온 사람도 아니었고, 이미 이민의 역사가 2-3대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한국 같은 소위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영토에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았던 다민족국가이기에 혼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한국과 아주 같진 않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빅토르 최의 정체성에서 그의 아버지 쪽이 한국계였다는 사실은 작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 이민의 역사를 거쳐 한국과 전혀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그것도 절반뿐이니 민족적 동질성 같은 걸로는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자료를 더 읽다가 뭔가를 새로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업데이트를 하겠지만.

사실 백인 위주의 국가라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러시아에서 반이라도 한국계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 생소한 고려인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졌다는 것, 성이 '최'씨라는 것(초이든 쪼이든 아무튼 최씨에서 유래한 성이니까) 그런 점이 한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체는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외모 자체도 한국인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고. 나부터도 그가 한국계가 아니었으면 그에 대해 알 기회 자체가 훨씬 적었을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는 그의 부계 혈통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점이 그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내 스스로가 궁금했고 때때로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위에서  이야기가 거기에 대한 지금 현재로서의 답이고.



참고로 그의 가계도가 있다. 왠지 어쩌다 발견했다. 어느 러시아 매체가 출처인데 구체적인 좌표는 잊어버렸다.



오른쪽의 부계 혈통 쪽을 보면 빅토르 최의 조부모, 혹은 증조부모가 한반도에서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보듯 빅토르 최의 아버지는 아직도 생존해 있고, 러시아 매체의 빅토르 최 관련 방송에서도 이 분을 자주 볼 수 있다. 노년의 그가 암 투병을 하는데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빅토르 최의 팬들이 의기투합해 모금을 했다는 그런 기사도 본 적이 있다. 그림에 따르면, 현재 빅토르 최의 가족 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와 아들 둘 뿐이다. 그가 사망 당시 어린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진은 여기서 처음 보았다.



여행기로 시작했지만 시작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샜다가... 이제 다시 이야기를 이어서 하면.


그의 묘지에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스릴이 넘쳤다. K-30이란 봉고차 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갔는데, 넵스키 대로의 옛 귀족과 황족들의 거주지였던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이 사는 건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풍경이 그냥 일상 그 자체겠지만, 외지에서 온 관광객에게는 이런 모습도 신기해 보이는 것이다.




내렸다. 주거지의 끝 지점 같은 느낌이었고, 종점이었다. 여기서 내리는 사람도 나 하나였고 대낮이지만 길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여기서부터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묘지의 이름은 Богословское кладбище (Theological Cemetry)이며 빅토르 최의 무덤뿐 아니라 정말 다양한 소련/러시아인들의 묘지이다. 유명인사들도 있고 일반인들도 있다. 이 묘지에 대한 러시아 위키 문서 


구글 맵이 있으니 찾아가긴 찾아갔는데, 입구에 들어가고 나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이곳은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이 중에서 도대체 어떻게 빅토르 최의 무덤을 찾는다는 것인가? 일단 여기까지 오는 것은 생각했어도 그 다음을 생각을 안해봤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정표는 많았지만 아무튼 이 곳은 규모가 큰 공동묘지였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었다. 물론 길을 물을 수도 있는데 그 자체가 민폐다. 관광지가 아니라 공동묘지인데 분명 누군가의 묘지를 돌보기 위해 온 사람에게 '유명인 누구 묘지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 건 좀-_-;; 게다가 러시아어도 못하는 완전한 이민족 관광객인데... 

깔끔하게 길이 뻗어 있고 관리가 잘 되는 공동묘지여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았다. 현지인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너무 관광객 티를 내지 않게 조심하면서 정말 조심조심 걸었다. 사진은 다른 사람들이 없을 경우에만 몰래 찍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의 묘지 문화를 볼 수 있어서 이 장소 자체가 새로웠다. 내가 지금까지 가 본 묘지라곤 산에 봉분을 쌓고 그 위에 풀이 자라는, 일 년에 두어번 가서 벌초를 하는 그런 종류의 무덤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공동묘지에 가 봤다면 덜 새로웠을까? 일단 좀 놀랐던 부분은 묘지 비석의 다양성이었다. 묘지의 크기 자체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비용이 다른 것일까? 소련 시절엔 어땠을지) 같은 크기의 땅에서도 사람마다 비석이 다양하다. 각자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웠던 것은 비석에 고인의 생전 사진을 저렇게 새겨 두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영정 사진과는 다른 것이 노년의 사진도 있지만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사진은 아닌 듯 했고, 군복을 입은, 즉 고인의 직업을 나타내는 사진도 있고 그랬다. 게다가 일부 묘지의 경우엔 고인의 생전 모습을 그린 작은 흉상도 놓여 있었다. 가족이나 친지들이 고인을 추억하면서 두었을 것이다.

단순히 줄을 맞춰 세운 비석에 고인의 이름 정도만 쓴 획일적인 묘지가 아니라, 각자의 공간 안에서 저렇게 구체적인 사진과 개성있는 비석 모양을 통해 고인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해 두었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 내 경우 조부모님의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가더라도 산소에 조부모님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잊혀져서 낡고 돌보는 이 없는 듯한 묘지도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듯 많은 비석 앞에 꽃이 놓여 있었고, 비석 앞의 땅에 꽃이 심어져 자라는 경우도 있었다. 묘지라고 하면 사실 음침할 수 있는 장소인데 저렇게 꽃이 많으니 좋았다. 그리고 그 꽃은 그냥 거기 있는 게 아니라 대개는 친지 또는 고인을 기억하는 이가 고인을 찾아와서  꽃일 것이다. 실질적인 걸 생각해 보면 벌초 같은 것에 비해 꽃을 심거나 선물하는 건 보기는 더 예쁘면서도 노동력도 안 필요하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묘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공간에 크게 세워진 비석,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봐도 고려인인 것 같은 고인의 생전 사진, 거기다 태극 무늬에 태권도 복장까지.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Вячеслав Динович Цой (Vyacheslav Dinovich Choi) 라는 분이다. 합기도, 태권도, 유도 등 다양한 동양권 무술 전문가였으며 원래 의사였으나 나중에 동양 무술을 배워 그 전문가로 활약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련 단체장을 역임했다. 범죄 조직의 리더였다는 말도 있으며 90년대에 암살당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그의 이름을 딴 무술 센터가 있다고 한다 - 라는 것이 러시아 위키피디아의 설명이다. 링크



조심스럽게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디선가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 보니 빅토르 최의 팬들이 그의 무덤 앞에서 기타치며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목적지를 찾았다.



빅토르 최의 무덤은 저렇게 상대적으로 널찍한 장소에 혼자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다. 벤치도 있고. 저렇게 무덤을 지키는 팬들이 항상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특히 그의 생일과 기일이 되면 사람들이 여기에 엄청 많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런 날에 여행을 맞춰서 왔으면 더 장관을 볼 수 있었겠지만 뭐, 그 날짜까지 맞춰서 올 수는 없었다.




듣던 대로 팬들의 헌화와 기념 사진. 편지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저기서 무덤을 열심히 돌보고 있던 아저씨는 뭔가 고려인같은 외모였다.


죽은 자에게 영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빅토르 최의 영혼이 어딘가에 있고 이 세계와 이어져 있다면, 죽은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매일같이 팬들이 찾아오고 꽃을 헌화하고 거리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서 되게 좋아할 것 같다.




그의 무덤 옆에는 2005년 세상을 떠난 부인 마리안나 최(Марианна Игоревна Цой)의 묘도 함께 있는데, 나는 이 묘가 여기 있는 걸 보면서 사실 빅토르 최의 생전 사생활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마리안나 최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마리안나 최에게 있어 빅토르 최는 두 번째 남편이었고, 그 빅토르 최의 사망 이후 다른 남자와 살았다. 그런데도 죽어서 여기에 묻히게 되었고, 그리고 빅토르 최의 성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일반 러시아인에게 있어서는 정말 눈에 띄는 성일 텐데)이 좀 놀라웠다. 마리안나 최는 빅토르 최 사후에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최 벽 건립, 트리뷰트 앨범 제작 등 그와 관련된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고 하는데, 이 부인에게 있어 일찍 죽은 남편은 어떤 존재였을까?

게다가 세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와 부인의 관계는 좀 복잡했는데, 결혼을 한 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부인과 헤어져 그 새로운 애인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마리안나 최에 따르면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통보했으며, 그래서 둘은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그러나 법적인 혼인 관계는 계속 유지했는데 둘 사이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빅토르는 아들을 매우 좋아했으며 마리안나가 아들을 키웠으나 빅토르도 자주 보러 왔고 데리고 다녔다. 뭐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 외에도 러시아 웹에는 빅토르 최의 사생활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으므로, 러시아어를 이해한다면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많을 것 같다.

뭔가 복잡한 관계 같은데. 아무튼 법적인 남편이었지만 이미 실질적으로 이혼한 상태였던 빅토르 최를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곁에 부인으로서 묻히게 된 이 마리안나 최라는 사람이 좀 궁금했던 것이다.



이렇게 무사히 참배를 마치고... 나간다. 

나가면서 묘지 사진을 (몰래) 많이 찍었다. 고인의 사진이 있고 나무와 꽃이 있는 이 곳이 싫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이렇게 묘지 앞에는 꽃집이 있다.



다시 아까의 K-30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간다. 종점에서 혼자 타니 중앙아시아에서 온 듯한 얼굴을 한 버스기사 아저씨가 친절한 얼굴로 뭐라고 하시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무튼 정말 긴장했지만 별 일 없었고, 정말 좋았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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