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5


오늘 아침에는 어제 들렀던 붉은 광장에 다시 가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레닌의 묘에 한번 가 보고 싶었다. 레닌의 묘는 개방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화 목 토 오전 9시-낮 1시까지만 개방하고, 많은 경찰들이 지키는 가운데 한명한명씩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한다. 줄은 물론 무척 길다. 그래도 마침 오늘 아침(당시 화요일이었음)에 개방한다고 하니 여기 온 김에 역사적인 장소를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어제 본 그 유학생분이 오늘 체크아웃한다길래 반가웠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 분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그냥 나와버렸다.


오늘의 일정:


1 성 바실리 대성당

2 레닌 묘

3 '편수'

4 글린카 음악문화 박물관

5 러시아 현대사 박물관

6 차이코프스키 홀

7 카페 무무




성 바실리 대성당을 '뒤에서' 본 모습이다. 사람도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르듯 이곳도 앞모습은 익숙하지만 뒷모습은 약간 낯설다.




익숙한 앞모습...

예쁘게 찍어 보려고 막 사진 필터를 넣어서 찍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흐리고 안 예쁘게 나왔다. =_= 뭐 예쁜 사진이야 인터넷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올려놓긴 했겠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이드 투어를 한 날 성당 안에 몇 번 들어가 봤으니, 이번엔 그냥 밖에서만 구경하고 안 들어갔다.



9시에 개장을 하면 바로 입장하려고 좀 일찍 나와 보려고 했지만, 게으른 탓에 줄을 섰을 때는 이미 10시 반이었다. 그리고 줄이 정말 꽤 길었다. 묘지에 입장할 때까지 4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배터리가 한정되어 있으니(가져온 보조배터리가 여행 내내 작동하지 않았음) 핸드폰 배터리도 마음껏 사용할 수 없고, 그냥 주위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멍때리고 서 있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도 이것도 관광지라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외국인들)이 있다. 내 앞에 서 있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 새치기 집단을 향해 뒤로 좀 가라고 했지만 이 새치기 집단은 그냥 쌩까고 새치기를. -_-

레닌 묘는 그냥 묘가 아니라 레닌의 시신이 방부처리되어 있는 곳이다. 레닌이 소련의 신성한 '국부'였던 시절 소련 공산당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처리해 이곳에 모셔두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왠지 이렇게 남아 있는데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렇게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다니. 만약 남북한이 통일되고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지금 방부처리되어 있을 김일성의 시신도 이렇게 구경할 날이 오게 될까? 아 그리고 관광지화되었지만 일단 묘지니까 당연히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레닌 시신 주위를 걸으면서 시신을 구경(참배)하고 나오는 건데, 그 건물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찍을 수가 없다. 사진 자체는 인터넷에 찾아보면 금방 나오긴 한다.

오래 기다려서 시신을 구경한 경험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한참 줄을 섰다가 1분만에 놀이기구를 타고 나오는 그런 기분인 것이었다. 밝은 야외에서 계속 서 있다가 어두컴컴한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눈이 적응을 못해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시신을 다 보고 나올 때까지도 눈이 좀 적응을 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레닌 시신은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보기 때문에 계속 거기 서 있을 수가 없고 그냥 쭉 걸어서 나와야 한다. 어렴풋이 보았던 레닌의 방부처리된 시신은 홍콩 마담투소 박물관의 유명인 피규어랑 좀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짜로 레닌에게 추모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상황보다는 그냥 무덤이 있고 거기에 꽃을 바치고 이런 게 더 추모하기 좋지 않을까? 만약 빅토르 최가 이렇게 방부처리되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면 난 좀 많이 싫을 것 같은데. 한 줄로 얼른 구경하고 나와야 되니 꽃을 바치기도 애매하고. 아무튼 특이한 경험이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라는 경험을 위해서 이 곳에 가볼 만하긴 한 것 같다.




레닌의 묘를 보고 나오면 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역대 공산당 서기장들과 중요한 인물들이 이 곳에 모두 묻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묘를 쭉 한번 둘러보고 나오는 코스로 설계되어 있다. 역대 서기장들의 묘에는 각각 동상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헌화를 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한 서기장 앞에 놓인 꽃만 좀더 많았는데 그는 바로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53년 사망 후 원래 레닌과 마찬가지로 사후에는 방부처리가 되어서 레닌과 함께 모셔져 있었다. 흐루시초프가 다음으로 권력을 잡아 스탈린이 과거에 한 정책을 대놓고 비판을 했고, 그 이후로 스탈린이 상당히 격하되어서... 결국은 방부처리되어 있던 시신이 끌어내려져 이렇게 땅에 묻히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 '당신은 레닌과 같은 급이 아니다'라는 걸 그렇게 보여주려 했나보다.

일반적으로 묘지는 사람의 일상생활공간과 먼 곳에 있는데, 이렇게 권력의 중심부인 크렘린 바로 옆에 역대 서기장들의 시신을 모셔둔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것 같다.

세 번째 사진에 있는 이름들 역시 분명 중요한 사람들이고 여기가 그들의 묘지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지식이 부족한 나로선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었다.





또 소비에트 지하철! 모스크바에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지하철을 탈 일이 많았고, 모스크바 지하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렇게 오며가며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실 이런 뜨내기 관광객의 입장에선 현재의 러시아에서 소련의 정취가 많이 느껴지는 것 같진 않다. 관광지는 관광지 같고, 기념품 샵은 기념품 샵 같고, 호스텔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고 친절하고, 식당은 식당이고. 그래서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게 약간 신기루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철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민중예술'이 그려져 있고 레닌 흉상이 있고 한 것을 보면 소련의 존재가 그나마 실감이 났다.


붉은 광장 구경을 마친 후 가는 곳은 일단은 '글린카 음악문화 박물관'이었다. 글린카는 누군가의 이름인 것 같고, 음악문화 박물관이 있다고 하길래 가보기로 했던 것이다. 지하철 Mayakovskaya 역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신기한 걸 발견해서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고파왔고, 지하철역에 내려서 뭔가를 먹어보자는 생각에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글자의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편수' 대체 뭔 소리인가. 음식 이름인지 사람 이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 들어가 보았다.




가게 이름은 Пян-се라고 하고 한글로 '편수'라고 병기되어 있다. Пян-се는 아마 '퍈셰' 이 비슷하게 읽는 단어인 것 같고, 잘은 몰라도 한글 '편수'를 러어식으로 읽는 발음인 것 같았다.




솔직히 뭐가 뭔지 몰랐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이게 음식 이름인 것 같긴 한데 들어본 적도 없고. 메뉴판도 신기했다. '편수'라고 되어 있고 맨 위에 있는 것은 아마 '클래식' 어쩌고 하는 메뉴. 두번째는 읽어보면 '김치' ... 기본맛 편수와 김치맛 편수를 파는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왼쪽 아래에서 두번째는 '미욕 궄(미역국)' 그리고 맨 아래에는 '김치'를 판다.

오른쪽에 파는 것은 각종 커피와 음료. 또 미역국과 김치를 파는 가게답지 않게 카페처럼 깨끗하고 모던하게 되어 있다. 하긴, 미역국이나 김치가 전통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입장이고, 러시아인 입장에서는 이국의 신기한 요리가 아닐까.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고려인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조선족, 재일 교포, 고려인 등, 그런 사람들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백년 이백년 전에는 그들도 한반도 거주민이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고, 한국에서 온 문화적 요소가 현지와 만나면서 변하거나 보존되거나 하는, 그런 모습 자체가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음식만 해도, 러시아 사람들은 알고 한국 사람들은 모른다는 한국 요리 '당근 김치' 같은 것은 한국 문화의 어떤 점은 보존하고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달라진 음식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꼭 고려인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검색을 잘 못했는지 찾지를 못했다. 그리고 또 그런 식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가 치안이 불안정한 탓에 너무 구석진 곳에 있는 경우 갈 엄두도 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렇게 '한국인은 모르는 한국 음식'을 우연히 찾게 되다니 정말 눈이 반짝였다! 

점원은 그냥 러시아 사람이었고, 나는 '클래식 편수'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 편수라는 음식, 의외로 굉장히 무난하게 맛있는 맛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고기 찐만두맛이었기 때문이다. 고기 찐만두일 뿐이고 특별한 것도 없다. 메뉴 왼쪽 두번째의 '김치 편수'라면 뭐 그냥 김치 찐만두 맛이 나지 않을까. 양도 많았다. 맛있었다.



이걸 먹으면서 대체 이 편수가 뭔지 웹검색을 해 보았다. 나무위키에도 북한음식인 '편수'가 올라와 있었지만, 이 고기만두 편수는 그 편수와는 또 다른 음식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편수(пянсе/pyanse)는 사할린 한인들이 1980년대 즈음 만들기 시작한 음식으로, 블라디보스톡 등 러시아 극동에서 근래 들어 보편적인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극동 지역에는 편수 노점이 흔하다고 한다. 모스크바 같은 곳에도 내가 오늘 간 곳처럼 지점이 생겼지만 아무래도 여기선 보기 드문 음식일 것이다. 사할린 한인들이 만든 고기만두에 이런 이름이 붙어서 내가 오늘 이걸 먹어보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_+




이 가게는 크기가 되게 작고 사람들이 테이크아웃을 많이 해 가는 곳이지만, 자리가 2-3곳 있으니 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여길 지나가면 꼭 먹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엄청 신기한 요리지만 맛은 무난하게 맛있다!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박물관에 가기 전에 공연 티켓을 사려고 한다.

이번에 길거리 연주자들도 많이 보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클럽 '캄차카'에서도 좋았지만, 사실 예술의 나라 러시아에 오면 소위 '고급예술'의 영역도 꼭 접해봐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린스키 극장이나 볼쇼이 극장의 발레공연을 역시 봐야 하지 않을까 했지만, 공연 스케줄과 내 일정이 맞지 않거나, 공연 스케줄이 맞는 경우에는 매진되었거나, 이런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발레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뭔가 스케줄이 다 안 맞거나 내가 전혀 모르는 영역이거나 했다.

내가 찾아보던 공연장 중에 이 차이코프스키 홀도 있었는데, 문제는 홈페이지에 공연 스케줄만 나와 있고 온라인 예매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차이코프스키 홀의 공연은 기본적으로 직접 현지에서 오프라인으로 표를 사야 하는 형식이었다. 이것 때문에 도대체 여기에 가봐도 될지 엄청 고민했다. 러시아어를 못하는데다 소심한 나는 인터넷에서 마계 러시아의 불친절에 대한 말을 너무 많이 본 것이었다. 기차역에서 표를 사려고 했는데 번역기에 쓰인 러시아어를 적어서 보여주자, 역 직원이 종이는 뺏어서 버려버리고 바로 이 외국인을 무시한 후 줄 뒷사람부터 불렀다는 그런 믿을 수도 없는 무서운 불친절(...) 같은 게 생각나서, 러시아어를 못하면 이런 곳에서 표를 살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막 직원이 화를 내면서 알 수 없는 러시아어를 하진 않겠지, 이런 걱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가 보니, 의사소통은 되지 않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은 직원분이 계셨고 아무렇지도 않게 표를 살 수 있었다. 휴!

오늘(7월 5일) 밤의 공연이고, 코사크 족 민족음악 및 춤 공연이다. 있다가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산 표는 400루블짜리인데 가장 싼 표다. 싸게 사서 좋긴 했는데, 있다 다시 쓰겠지만 너무 멀어서 좀 아쉽긴 했다.




차이코프스키 홀 앞 공원인데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들 그네를 타고 있어서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약간 심즈같았다.




이 현수막은...? 아무리 봐도 중간의 그림은 양념치킨, 맨 오른쪽은 김밥 같은데... 뭔지 모를 곳이었다. 휴. 치킨이랑 김밥이 먹고 싶다.


이어서 다음 포스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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