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어제의 빅토르 최 유적 순례를 마치고 오늘부터 4일은 모스크바에서 지낸다. 11시에 삽산 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일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역 내부. 나름 깨끗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가기 전에 다른 블로그 여행기에서도 많이 읽었지만 러시아의 열차역 시스템은 한국과 달라서, 역 이름을 지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으니까 상트페테르부르크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는' 부분이 강조되어 '모스크바 역'이 된다. 반대로 모스크바에서 이 도시로 다시 오려면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그라드 역'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근데 그러면 같은 도시 안에서도 행선지에 따라 역을 여러 곳 만들어야 할텐데, 왜 이런 시스템을 택했을지 궁금하다.




고속열차 삽산(Сапсан)의 모습! 탑승하기까지는 테러 등을 방지하기 위해 비행기 탑승 시처럼 짐 검사를 해야 한다.




삽산 내부는 되게 좋다. 그런데 나중에 열차 안내 책자를 보니 이코노미석(가장 저렴한 좌석)은 충전 케이블이 없는데 그 윗 등급의 좌석에는 있다고 한다. 이번에 가져온 보조배터리가 고장나서 여행 내내 배터리가 궁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한 등급 위를 탈 걸 하고 생각했다.




열차 안에서 배터리도 없고 할 일이 없어서 열차 잡지를 꺼내 보는데 이런 게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진 전시인데 80년대 소련 락앤롤의 순간순간을 담아낸 전시이다. 마침 이런 걸 발견하다니 잘 되었다.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 때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소 지루했던 시간이 끝나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의 첫 인상. 일단 숙소를 찾아가서 짐을 둬야 한다.

한참 헤매다가 어떻게 지하철역 입구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안내문을 읽기 위해 구글 이미지 번역(구글 번역 앱에 내장되어 있는 기능이다)을 사용했는데 번역이 잘 된다. 이렇게 써 먹다니 기분이 좋았다.




지하철역 입구




모스크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교통시스템이 조금 다르다. 저렇게 생긴 기계에서 종이카드를 사서 찍고 들어가면 된다. 그 종이카드로 지하철, 버스, 트램 등 모두 탑승할 수 있다. 1회가 50루블이다(교통수단 종류에 상관없이). 그리고 1회/2회짜리 종이카드는 이 기계에서 살 수 있지만 다회권 카드를 사려면 판매대에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 카드는 1회권이든 수십번짜리 탑승권이든 모두 똑같이 생겼는데 카드 찍고 들어갈 때 앞으로 몇 번 남았는지 숫자가 뜬다. 카드를 찍었는데 0이라고 뜨면 이제 그 카드는 버리면 되는 셈이다.




말로만 듣던 그 소련 지하철의 모습! 소비에트 미술이 조각되어 있고 마르크스의 얼굴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있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편의성으로 봐서는 한국과 대만 지하철에 비해 좋지 않다. 하도 깊다 보니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빠른데도 승강장까지 가는 데 오래 걸리고, 그리고 열차가 굉장히 낡았다.

그래도 시민들이 다들 이용하고 있는 평범한 교통수단이고, 여행자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블로그 글을 보니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외국인이 혼자 모스크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보다 치안이 나아졌다고도 한다. 아무튼 나는 타면서 아무 일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대로가 직선으로 쭉 뻗은 데 비해 모스크바의 시가지는 원형이다. 그 원형의 중심부에 붉은 광장이 있다. 내 숙소는 이 근처(2번)였다.


1번의 지하철역에 내려 걸어간다.



호스텔은 DreamOn Hostel이라는 곳이다. 이 곳도 좋았는데 왠지 샤워실만 좀 덜 깨끗해서 아쉬웠다. 다른 시설은 정말 깨끗한데 샤워실은 좀 청소년수련원같은 느낌. 아무튼 첫 번째로 좋았던 점은 이 숙소는 위치를 찾기가 쉬웠다는 점이다. 저 화면의 다리 왼쪽을 보면 건물 1층에 작은 표시가 있는데 바로 호스텔 간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있었던 숙소는 전부 바로 앞에 가서도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듣기로는 도시의 법률 상 간판을 마음대로 붙이거나 하는 게 제한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숙소에 무사히 체크인을 하는데 너무 한국인처럼 생긴 분이 카운터에 앉아 계신다. '어 고려인이신가' 라고 생각하면서 입에서 나온 말은 바보같이 '니하오' 대만에서 하던 습관이 동양인을 보자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근데 그 분은 다행히 내 니하오를 못 들은 것 같다. ^^;;;

잠시 빨래와 짐 정리를 한 후 어딘가라도 가보자, 하고 나왔다.




모스크바 강의 지류. 확실히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남쪽이라서 오후 5-6시에도 노을이 생긴다. 그러나 서울에서처럼 해가 완전히 져 버리진 않는다.




시티은행이 없는데 돈을 뽑아야 할 상황이라 수수료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근처의 은행에서 돈을 뽑았다. 영수증을 그냥 찍어 본 것이다. 이렇게 시티은행 ATM이 아니라 다른 은행 ATM에서도 국제현금카드가 먹힌다는 게 다행이다. 왜냐하면 대만의 경우 시티은행 ATM 외에 다른 ATM에선 국제현금카드가 먹히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해 본 결과론 그랬다.



모스크바 강 너머로 보이는 크렘린과 정교회 사원의 모습이다. 크렘린 너머에 말로만 듣던 그 성 바실리 성당도 보인다. 너무 예쁜데 이 강을 어떻게 건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리도 아팠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생각했다.




지하철 역 근처에 있던, 또 하나의 엄청난 색감을 자랑하던 아름다운 성당 건물이었다. 저 첨탑 중 가운데는 황금색이고 양쪽 옆은 새파란 색에 금색 점박이(?) 무늬가 되어 있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안 어울릴 것 같은 색을 배치했을까, 그런데도 또 건축물을 전체적으로 보면 독특하고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성당의 영어 이름은 St. Clement's Church이다.




러시아에는 이런 '카페'가 정말 많아 보이는데, 한국에서 스타벅스나 카페베네 같은 커피(음료) 전문점을 카페라고 한다면 여기는 각종 식사와 음료를 팔고 테라스가 있는, 가격은 좀 비싸고 음식은 중급 이상인, 그런 곳을 통틀어 카페라고 하는 듯 하다.




도대체 어딜 가야 영어 메뉴판이 있을까 하고 살피다가 들어온 곳이 이런 곳이었다. IPA 생맥과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맛있었다. 내부는 이태원 펍 같은 느낌이었고, 딱히 러시아라고 해서 뭐가 다르진 않았다. 가격은 한국 이태원 펍보다 약간 싼 정도인 것 같다. 그냥 참고를 위해 아래 메뉴판도 남겨둔다.





여기서 뭔가 맥주를 마시면서 좀 오랜 시간을 멍때리고 있었다. 멍때리면서 돈도 많이 썼다(맥주).




집에 간다. 시간이 저녁 8시 반이었는데, 이렇게 해가 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주 천천히 지고 있었다. 이곳도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거리가 예뻤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