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1 


투어 해산 후... 돔 끄니기(Dom Knigi)에 간다. 돔 끄니기는 넵스키 대로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이 곳에는 한국과 달리 다른 소형 서점도 많아 보이지만, 저번에 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드가 있으면 돔 끄니기에서 20%를 할인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가는 길에 넵스키 대로에서 키노의 '뻐꾸기(Кукушка)'를 부르는 길거리 음악가를 발견하고 또 잠시 멈춰서서 녹화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매력적인 저음을 구사하는 것일까?! 빅토르 최도 그렇고 내가 겉핥기로만 들어본 바르드들의 음악도 그렇고 이런 저음으로 노래하는 남성 가수들을 간혹 접할 수 있었는데, 한국 대중음악을 생각해 보면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나거나 내가 모르는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역시 나는 러시아 음악 취향인가보다.



'뻐꾸기'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혈액형' 못지않은 키노의 대형 히트곡이다.

원곡 링크

리메이크 버전 Joanna Gagarina라는 가수가 부른 버전인데 2차대전 시기 전설적인 스나이퍼의 일대기를 다룬 전쟁영화에 삽입되면서 히트했다.


아래는 가사.
물론 내가 한 게 아니라 다른 분이 하신 번역을 가지고 온 것이다. 원 글은 여기인데 혹시 가지고 온 게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세요.


아직 부르지 않은 노래가 얼마나 많이 남았지?
말해줘, 뻐꾸기야, 그리고 노래해줘.
어디에서 내가 태어났고, 어디에서 내가 죽어야 할까.
땅에 누워야 할까, 아니면 하늘의 저 별처럼 날아야 할까.
날아야 할까.


저 하늘의 태양이 떠올라 나를 비추네
나의 손은 이제 주먹을 쥐기 시작하네,
만약 탈출구가 있다면, 내게 보여주지 않을래?
이렇게 말이야.

누가 이 외로운 발걸음을 다시 걸으려 할까?
누가 강하고 용감할까? 
누가 이 목숨을 건 전투의 댓가를 치뤄줄까?
우리의 기억속에는 몇가지 만이 남아있네,
건강한 마음과, 강한 손을 가진 살아남은 병사들이 있네.


저 하늘의 태양이 떠올라 나를 비추네
나의 손은 이제 주먹을 쥐기 시작하네,
만약 탈출구가 있다면, 내게 보여주지 않을래?
이렇게 말이야.

어디로 갔는가, 나의 자유여,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 운좋은 사람이 이 아침에 너를 다시 만난다면 내게 말해주기를
말해주기를 
네가 있을때 나는 행복했지만, 네가 없어지니 힘들구나
그러나, 나의 머리와 어깨가, 이 채찍 밑에서는 더욱 견딜 수가 없구나,
니가 보듯이.


저 하늘의 태양이 떠올라 나를 비추네
나의 손은 이제 주먹을 쥐기 시작하네,
만약 탈출구가 있다면, 내게 보여주지 않을래?
이렇게 말이야. 



빅토르 최가 쓴 가사에는 이 곡에서도 보듯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뭐 대중가요의 가사가 보통 그렇긴 하지만 강한 1인칭 시점인 것도 일단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 다음으로는 굉장히 비유적이고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쓰인 단어를 보면 '노래' '태양' '뻐꾸기' '주먹' 등 원형적인 상징만 사용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화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시대에 있는지 알려주는 단어는 빅토르 최의 노래엔 거의 없다. '전쟁'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할 때도 그는 특정한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시대의 전쟁을 이야기하는 대신 "대지와 하늘 사이에는 언제나 전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쓴 가사의 1인칭은 구체적인 시공간을 초월한 인물(남성)이 된다.



아무튼... 다시 넵스키 대로로 돌아와서.



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넵스키 대로의 모습이다. 러시아어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뭘 살펴볼 것이 없었다.




돔 끄니기 옆에 있는 음악 관련 상점이다. 이 곳에서는 주로 피아노 악보를 팔고 있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악기 관련 용품을 팔고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기타 스트랩이나 드럼 스틱 등도 있었다. 잠시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피아노 전공하는 친구에게 악보라도 사 줄 걸 그랬다.




돔 끄니기인데 외관이 굉장히 화려하다. 서점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고, 관광객들을 위한 엽서나 기념품도 굉장히 많이 판다. 길거리의 기념품 가게보다도 오히려 여기서 파는 기념품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서점에는 굉장히 다양한 책이 있지만, 관심 분야가 정해져 있다 보니 음악 코너의 책을 찾게 되었고, 빅토르 최와 당시의 러시아 록에 관한 책이 정말 많았다. 이 날 돔 끄니기에 간 것은 사실 그냥 책 구경을 하러 간 거였는데, 결국은 이 코너에서 한참 머무르게 되었다. 내가 팬이라서 이런 게 더 눈에 잘 보이는 것도 맞지만, 정말 지금의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의 인기란 압도적인 것 같다. 한국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서점의 대중음악 코너의 책을 휩쓸고 길거리에서 매일같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그 정도의 가수가 대체 누가 있을까? 러시아에 이번에 와서야 그의 상징성과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여기서 이 책 중 몇 권을 일단 사 왔는데, 과연 언제 러시아어를 하게 되어 이런 책을 읽을 날이 있을까? 언젠가는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날 마지막으로는 쳬례목(Teremok)에 가서 블린을 시켜 먹었다. 사실은 먹어 보고 싶었던 메뉴가 있었던 것이다. 연어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연어알 블린이 있다는 말을 러시아 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봐서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시킨 음료는 낮에도 마셨던 미드이다.

그런데 이 연어알 블린은 솔직히 먹어보니 좀 충격이었던 게, 너무 짰다. 생각해 보면 원래 연어알이란 짠 음식이다. 그런데 이 연어알을 블린 안에 넣어 뒀으니 짤 수밖에 없게 된다. 스시 중 연어알 군함이라면 짠 연어알을 중화할 쌀밥이 있지만, 이 블린은 그 자체로도 양념이 되어 있는 음식인데, 거기다 짠 연어알을 듬뿍... 그래서 연어알은 좋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았다. 먹고 나서 물을 엄청 마셨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미드를 먹으니 나는 굉장히 머리가 아팠다. 맛은 있는데 뭔가 두통이 심해져서 나랑은 안 맞는 음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많이 걷고 피로한 날이어서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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