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9
계속 넵스키 대로를 걸어 본다.
구세주보혈성당이 멀리 보이고, 운하를 따라 기념품 상점이 쭉 늘어서 있다.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아무튼 이것은 러시아의 편의점인데, 러시아에선 아무래도 한국의 CU나 세븐일레븐 같은 체인 점포는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이런 가게가 많은데, 이런 가게가 체인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안에 들어가면 한국의 편의점에서 파는 것들을 판다. продукты라고 하면 뭔가 영어의 Products와 이름이 비슷하니까, 그러니까 편의점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과연 맞았다! 이래서 키릴문자를 배우고 와야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작은 것에도 몹시 기뻐함)
러시아 오기 전 인터넷에서 많이 봤던 블린 체인점 쳬례목(Teremok)에 와 봤다. 영어가 안 통할 것 같아 메뉴 쪽에 있는 세트 메뉴 그림을 아무거나 가리켜서 달라고 했다. (...)
구성은 크바스(Kvass), 크리미하고 짠 수프, 밀가루를 얇게 펴서 그 안에 뭘 넣은 다음 싼 것(이걸 뭐라고 할지)이다. 짭짤하고 맛있었다.
아 그리고, 여기 올 때 혹시나 해서 변압장치를 사 왔는데, 한국 220v로 러시아에서 그냥 사용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러시아에서 쓰는 플러그가 더 가늘긴 한데 한국 것을 꽂아도 들어가긴 한다.
넵스키 대로를 계속 다니는데, 그냥 이렇게 다니기만 해도 정신없고 신기했다.
구세주보혈식당 쪽에 "German-Soviet Cuisine"을 파는 식당이 있었는데 대체 독일-소비에트 요리란 무슨 요리인지 궁금해진다. 파는 음식은 언뜻 보기엔 그냥 소세지 같았다.
러시아 미술을 집대성한 '러시아 박물관'인데, 요일을 착각해서 문을 연 줄 알고 가 보니 이미 입장이 끝나 있었다. 그 다음날 가게 된다.
러시아 박물관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거기에는 푸쉬킨의 동상이 있다. 여기서 굉장히 인상깊은 길거리 음악가를 보았는데, 바로 드레스를 입고 성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옆의 반주자는 전자 키보드로 오르간 반주 같은 것을 하고... 길거리 음악이 상대적으로 드물고 장르적으로도 결핍된 한국이나 대만에 비해 러시아의 길거리 음악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인상깊었는데, 그 중 한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한국에선 길거리 음악이라고 하면 보통 대중음악(그 중에서도 한정된 장르)뿐인데 여기서는 다양한 음악을 이렇게 자유롭게 연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점포명 아래에 Military shop & army goods 라고 쓰여 있다. 음... 밀덕들을 위한 장소인가? 애인하고 같이 왔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해 본다. 이 여행에선 애인이 오면 좋아할 것 같은 곳이 굉장히 많았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오지 못했다. 석사 대학원생은 방학이 있어서 이렇게 놀러도 다니고... 사실 직장인도 짧게나마 몇 주는 방학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버스 안내판
돌아다니다가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시티투어 버스는 앞서 말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드를 이용해서 무료로 탄 것이다. 이어폰을 제공해 주는데 그걸 버스 좌석 근처에 꽂으면 다양한 언어로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한국어로도 된다고 들었는데 왠지 버스를 타고 보니까 한국어는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 다음 내렸는데, 저녁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이렇게 관광하는 것도 되게 좋았다.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도 관광지를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이번에 굉장히 인상깊었던 것은 이 사람들이 정말로 극예술이나 공연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공연을 많이 보긴 하는데 그래도 특별한 날에 공연을 보러 간다면, 이 사람들은 뭔가 극예술, 공연 이런 것들을 굉장히 일상적으로 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의 부스는 공연 표를 파는 부스인데, 안에는 보통 나이많은 여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사람들이 저렇게 가서 공연 포스터를 보고 표를 사 간다. 이런 문화가 굉장히 좋고 새롭다고 생각했다. 공연의 구체적인 종류나 내용, 수준은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오후 8-9시. 아직 환하다. 숙소에 돌아가는 길이다.
한국 같았으면 이 시간에 숙소에 돌아가지는 않지만, 치안에 대해 여러 말을 들었던지라 밤에는 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대한민국 총영사관 건물을 지나쳤는데, 태극기가 갑자기 보여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이 곳에 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오는 일이 없었다.
이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이 도시의 성산업이었는데(...) 보도 바닥에 저런 표시(칠이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가 상당히 여러 곳에 되어 있었다. LOVE 24와 어떤 전화번호가 같이 있으면 아무래도 성산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러시아 여성의 이름+전화번호] [Relax+전화번호] 이런 표시가 길에 되게 많이 되어 있다.
90년대의 혼란기 속에서 러시아의 성산업이 국외에까지 정말 유명해졌는데, 그런 어두운 현실의 연장선상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것과는 다른 맥락일 수도 있다. 우선 서울만 해도 성매매 삐라가 길거리에 하도 많이 뿌려져 있고...
숙소 근처에서 본 빅토르 최의 커버 콘서트 홍보물.
위에 다른 종이가 붙었다가 떼어진 흔적이 있어 얼굴이 가려졌지만 저건 분명 빅토르 최임에 분명하다(매의 눈) 그리고 콘서트 제목도 "우리의 최(наш цой)"라고 하고 있고. 빅토르 최는 역시 "우리의" 그러니까 집단적인 뭔가를 상징하는 아이콘인 것이다. 그나저나 콘서트는 이미 이전에 했던 것 같다.
이 날은 숙소를 못 찾아서 숙소 바로 주위에서 길을 약간 헤맸는데, 그러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위협적인 순간을 겪었다.
치안이 안 좋은 지역의 경우 '해가 지면 나가지 않는다' 라는 규칙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지만, 사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은 백야라서 해가 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소 헷갈리는 상황이 된다. 밤 10시가 넘어도 아직은 환한 것이다. 방금 시차를 넘어서 온 관광객에게는 해가 지지 않으니 시간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는 밖이 밝아도 밤이라는 시간이 다른 느낌을 주는지, 밤 9-10시가 되어가자 바 앞에서 취해 있는 남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와 무관하게 숙소를 찾아 걷고 있는데, 어느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술집 앞에 있던 한 무리의 러시아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무슨 단어를 갑자기 외치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지나쳤는데 그 단어를 계속 외친다. 뭔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노파심이겠지만 나를 부르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건물 앞에 있던 그들을 지나쳐서 걷고 있었고, 내 등 뒤에서 그들이 자기들끼리 흥분한(신난 건지 뭔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 이 때 한편으로 내 앞에 서 있던 길고양이가 내 쪽을 보고 있다가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놀라서 뒷걸음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남자들이 내 쪽을 보고 뭔가를 외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당연히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도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면 좋겠는데, 진실은 계속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니. 아무튼 너무너무 위험한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 굉장히 불안했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나기 조금 전(저녁 8시쯤)에도 이상한 일을 겪었는데, 내가 한국 총영사관 건물을 지나칠 때쯤 길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어떤 러시아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건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나에게 말을 건 건지도 몰랐지만 알고 보니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물론 인사뿐이었지만... 뭔가... 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다른 인종이 지나가니까 신기해서 말을 걸어본 것인가? 아무튼 이 일도 다소 이상했는데, 그러고 나서 숙소 근처에서 저런 일을 당하니 정말 러시아는 무섭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리고 백야도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만에서 유학생으로 3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한번도 치안 위협을 겪은 적이 없고, 밤에 맥주를 마시면서 혼자 지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 있을 때는 치안이 안전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여기 여행을 온 첫 날부터, 불량배들과 취한 이들, 위험한 우범자 집단에게 밤거리를 빼앗기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 뭔가 기분이 더러웠다. 치안이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 같다.
다만 한편으로는 대만에 살면 내가 '이민족'이라는 사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더 편안한 것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인이나 대만인이나 언뜻 보기에 슬라브인-한국인의 차이만큼 다르진 않기 때문에 내가 입을 떼기 전에는 사람들이 보통 현지인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이나 대만에서 '이민족'으로 살면 어떨지, 그 때도 안전하다고 느낄지는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른다. 예전에 웃긴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한국 지하철에서 나이많은 남성들이 히잡을 쓴 동남아계 여성들(유학생들인 것 같았음)에게 막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이구 한국어 잘하네!" 라면서 막 반말을 시전... 한국/대만에서 나는 이런 일을 겪진 않지만, 다른 인종들에게는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러시아인(흔히 말하는 러시아 민족)은 별로 위험을 안 느끼고 살지도 모른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는 이민족의 입장에서는 가장 안 좋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조심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뼈가 묻혀도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 숙소는 넵스키 대로에서 지하철 역 하나도 채 떨어지지 않은,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부근에 한국 총영사관도 있는 곳이고. 게다가 백야였다. 그런데도 이런 이상한 일을 겪다니... 정말 굉장히 불안했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후의 여행에선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아무튼 다행히 숙소를 잘 찾아서 들어갔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바로 앞 가게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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