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까지 러시아와 별다른 인연도 없었고 현재 대만에 거주중인 내가 갑자기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간단히 말하면 올해 봄에 빅토르 최(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라는 유명한 한국계 가수가 러시아에 있다고 이야기 정도는 들어봤지만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올해 4월쯤 plsong.com에서 정말 우연히 그의 음악을 발견했고, 아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었다니! 라고 생각했던 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나저나 plsong은 민중가요 감상 사이트인데, 여기에 빅토르 최의 음악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빅토르 최에 대해 알아나가게 되면서 단지 그 한 사람뿐이 아니라 당시의 소련과 지금의 러시아도 함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빅토르 최가 오늘날까지 그렇게 애창되고 기억되는 건 물론 그의 음악이 좋고 그가 매력적인 사람이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시대에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 라고 정치적 변화를 외쳤던 빅토르 최. 그런데 지금의 러시아를 보면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주의를 벗어난 러시아가 그가 바라던 자유로운 사회는 아닌 것 같다. 90년대 이후 러시아는 여러 방면으로 굉장히 악명이 높았고, 지금도 그렇다. 푸틴의 개인 독재, 동성애 탄압, 스킨헤드와 나치즘 같은 단어들이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매체에서 보도하던 러시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금의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가 아직도 널리 기억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기했고, 러시아가 당시엔 어땠고 지금은 어떤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슬라브 민족우월주의로 악명높은 러시아에서 혼혈인 빅토르 최가 국민 가수의 반열에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생각해 보면 혼혈 가수는 굉장히 적다. 언뜻 생각나는 사람으로는 인순이 정도? 주현미도 인종적으로 눈에 띄진 않지만 아버지가 화교이긴 하고.
그리고 빅토르 최는 개인이었지만, 동시에 80년대 소비에트의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가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늦어도 70년대 이후 소련에서는 영미권의 록 음악을 좋아하고 따라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고, 특히 80년대 이전 이들은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소비에트 정권에서는 자본주의 사상을 전파할 위험이 있는, 공산주의의 이념에 맞지 않는 음악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록 콘서트를 주최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 사람들도 있었고, 모든 음악활동은 '비공식적'인 것이 되어서, 자본주의의 음악인 록을 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인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물론 빅토르 최가 8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소규모 라이브를 했던 걸 보면 정권의 탄압이라고 해서 북한의 그것처럼 무자비하고 전면적인 탄압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탄압은 탄압이었던 것 같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도시의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있었던 록밴드들은 80년대 중후반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물결을 타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기 시작한다. 키노(Кино́)를 비롯해 아쿠아리움(Аква́риум), DDT, 알리사(Алиса) 같은 밴드들은 이 때부터 엄청나게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를 흔히 '러시아 록'의 시기라고 한다. 동시대의 서유럽 및 미국 밴드들이 여흥을 위한 음악을 했다면, 이들을 똑같이 듣고 따라한 밴드들이라고 해도 러시아에서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이들이 아주 다른 맥락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러시아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중국의 추이지엔/최건(崔健)이나 또우웨이/두유(竇唯), 허용/하용(何勇) 같은 록 음악가들이 90년대 초의 중국 민주화 물결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러시아의 상황에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키노는 그러한 '러시아 록'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였고, 빅토르 최는 키노의 곡과 가사를 쓴 밴드의 보컬이자 아이콘이었다. 80년대 후반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던 빅토르 최는 90년 예상치 못하게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키노의 역사는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몇 달 되지 않아 소비에트 연방은 무너진다. 그 이후 러시아 록은 당시 러시아 사회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혼란기에 접어들게 되는데, 다만 그중 몇몇 밴드는 당시와는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러시아 록과 빅토르 최에 대해서는 내가 이렇게 길게 말을 할 게 아니라, 굉장히 자세하고 체계적인 글이 있다.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 (1) | 빅또르 쪼이(VIKTOR TSOI):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아니, 쌍뜨 뻬제르부르그의 마지막 영웅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2) |구 소비에트 사회에서 예술음악, 민속음악, 대중음악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3) | 소비에트 체제의 기생충들의 역사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 (4) | 1980년대 록 뚜소브까의 시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 (5) | 1980년대 말 소비에트 록의 영광과 좌절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 (6) | 1990년대의 카오스…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7): 글로벌 시대의 로컬 록을 향하여
신현준 선생님의 웨이브 연재 글인데, 빅토르 최와 '러시아 록'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정리한 한국어 글은 이 외에는 아직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한동안 없을 것 같다. 이 분이 이렇게 러시아 록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셨는지 그 동안 몰랐다.
빅토르 최와 소비에트 체제에서의 록에 대한 그 외의 글:
러시아 록앤롤 ‘최후의 영웅’… 빅토르 최
How underground musicians kept Soviet rock alive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러시아 여행을 가게 되었다.
빅토르 최가 지금 러시아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도 궁금했고, 자료를 찾다 보니 그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그를 기념하는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다른 당시 러시아 록밴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봐도 희한하게 음악이 다 내 취향에 맞길래, 어떻게 영미권의 록을 들어도 러시아에서는 이런 음악으로 변용이 되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그냥 러시아 자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마침 곧 여름방학이었고 그 춥다는 러시아의 겨울을 맛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러시아를 가려면 지금이다! 라고 충동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같은 것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러시아어를 못하고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대도시를 가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가 보자, 라는 계획을 짰다. 빅토르 최든 러시아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랑 직접적인 관련은 전혀 없는데도,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해서 여행 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나는 지금 타이페이에 거주중이고, 타이페이에서 러시아까지는 아마도 직항이 없는 것 같다(적어도 내가 찾기엔 그랬다). 그래서 상하이 경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순전히 가격을 보고 중국동방항공의 비행기를 골랐고, 가격대로의 서비스를 체험했다.
출발 : 6월 30일
타이페이(타오위안 공항) - 상하이(푸동공항) 0905-1050
상하이(푸동공항) - 상트페테르부르크(풀코보 공항) 1500-2105
귀국 : 7월 7-8일
상트페테르부르크(풀코보 공항) - 상하이(푸동공항) 23:05-13:30(+1)
상하이(푸동공항) - 타이페이(타오위안 공항) 15:50-17:40
이게 내가 애초에 구입한 항공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구입을 하고 나서 항공권 구매 대행사에서 연락이 와 30일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했다. 이걸 바꾸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아무튼 가는 일정을 28일로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출발 : 6월 28일
타이페이(타오위안 공항) - 상하이(푸동공항) 0905-1050
상하이(푸동공항) - 상트페테르부르크(풀코보 공항) 1500-2105
귀국 : 7월 7-8일
상트페테르부르크(풀코보 공항) - 상하이(푸동공항) 23:05-13:30(+1)
상하이(푸동공항) - 타이페이(타오위안 공항) 15:50-17:40
이렇게 되었다. 여행이 이틀 더 늘어난 것이다. 아무튼 타이페이에서 상하이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일정이다.
숙박과 이동은
6월 28, 29일 2박: 상트페테르부르크 Traveller's Palace 호스텔
6월 30일-7월 3일 3박: 상트페테르부르크 Friends on Vosstaniya 호스텔
7월 3일 오후: 고속철도 삽산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이동
7월 3일-6일 3박: 모스크바 Dream on 호스텔
6일 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야간침대열차로 숙박 및 이동 해결
이런 일정이었다.
러시아에 가기 일주일쯤 전에 학기가 끝났고, 그래서 어느 정도 쉴 시간이 있었다. 쉬는 동안 구글에서 여행 후기를 읽고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러시아 여행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사실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악명높은 스킨헤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불친절하고 무서운 러시아인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신비의 땅(?) 이런 이야기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안전 조심하라고 걱정을...;;; 아무튼 치안을 정말 신경쓰면서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일 없겠지만 가서 이상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리고 빅토르 최도 있고, 영어가 하도 통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러시아어를 이참에 배워보자 싶어서 러시아어 기초 강의를 아주 약간 들었다. 별로 시간이 없었으므로 많이 듣진 못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뭘 공부하는 게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은 강의는 유튜브에서 찾은 경기방송 러시아어 강의이고, 독학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 강의를 많이 듣는 것 같다.
나는 이 강좌 초급을 10강까지 듣고 러시아에 갔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요만큼 듣고 내가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알파벳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키릴 문자를 못 읽었으면 여행의 난이도가 훨씬 상승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초 인사(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등)도 강의에서 들은 대로 배워갔더니 도움이 되었다. 무료인 걸 떠나서 강좌 자체도 되게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오기 위해 핸드폰을 새로 샀다. 지금 있는 핸드폰이 굉장히 낡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 데다 카메라도 화질이 좋지 않아서, 좀더 깨끗한 사진을 찍어오고 핸드폰도 배터리 걱정 없이 쓰고 싶었던 것이다. 핸드폰 공기계를 사니 보조배터리가 따라왔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이 공기계는 기계 결함이 있어 다른 기계로 바꿔달라고 그쪽에 다시 보냈고, 그쪽에서 열흘 가까이 지나서 보내주는 바람에 결국 핸드폰은 원래의 폰을 들고 가게 되었다. 거기다가 공기계를 살때 끼워준 보조배터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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