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30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빅토르 최에 대해 알아보다가 클럽 캄차카(Камчатка)에 대해 알게 되었다. 클럽 캄차카는 빅토르 최를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그가 활동했던 당시의 자료도 보관되어 있고, 관련 영상이나 CD를 팔며, 빅토르 최/키노의 커버 공연을 비롯해 80년대 당시의 러시아 록 관련 공연을 하는 곳이다. 키노의 시대를 기념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 전 이곳에 대해 알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캄차카는 원래 러시아의 지명인데, 화산이 많아서 그런지 이 단어가 '보일러'를 뜻하는 별명 같은 것으로도 쓰인다고 한다(어딘가에서 본 설명). 보일러가 무슨 상관이냐 하면 빅토르 최는 원래 저작권이나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수입을 거의 얻지 못했고, 그래서 원래의 직업인 보일러공으로 일하면서 록밴드 활동을 같이 했다. 이 클럽 캄차카가 세워진 장소는 바로 빅토르 최가 보일러공으로 일했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거나 했던 지하의 작은 보일러 방이었던 것이다. 캄차카는 빅토르 최의 흔적 위에 세워진 곳이다.
클럽 캄차카를 소개하는 글
링크 1
링크 2
한국어 기사
이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페북 후기
링크
이 클럽에는 원래 인터넷 페이지가 있(었)다. 내가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까지만 해도 클럽의 홈페이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클럽에는 공간 소개, 찾아오는 길, 공연 스케줄 등이 간략히 적혀 있다. 그런데 6월 말쯤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도메인 만료 페이지가 뜬다 -_-;;; 사장님이 홈페이지를 다시 열어두길 바라며 일단 페이지 링크를 해 둔다.
위의 지도를 보면 캄차카(지도 왼쪽 위)는 넵스키 대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또 그렇게 멀진 않다. 근처에 관광지(피터 앤 폴 요새)도 있고. 아무튼 버스를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한다. 관광지를 벗어나는 것이 처음이라 개인적으론 좀 긴장한 상태였다.
러시아의 거리란... 관광지로 잘 꾸며진 넵스키 대로의 일부 건물을 제외하면 일반 러시아인들이 사는 생활공간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데가 있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딱 맞다고 생각한다. 견고해 보이는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오래되고 칠이 벗겨진 부분도 많고,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방치된 부분도 있고, 거기다 그래피티에 점령된 벽이 너무 많아서, 해는 밝지만 뭔가 음산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만에도 회색빛의 칠이 벗겨진 건물이 많지만 불청결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있어도 황량하고 을씨년스럽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두 장소에 대한 선입견(치안 문제)때문인가? 거리에 다니는 사람은 많긴 했다.
약 저녁 7시. 이 날도 해는 밝았지만 버스에서 내려 길을 찾아가면서 모르는 곳에 혼자 뚝 떨어졌으니 굉장히 긴장했다. 현지인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다니는 등 거의 전투태세로 돌입한 상태였다.
조금 헤매다가 아파트 공터 같은 곳에 있는 클럽 캄차카를 찾아냈다.
클럽 자체는 저 반지하 속의 방이다. 그런데 이 클럽 주위 공간이 공터같은 곳이라, 벽에 꼼꼼히 그래피티, 낙서, 공연 포스터 등이 붙어 있다.
클럽 옆 벽에 세워진 빅토르 최의 흉상과 기타 조각품.
이는 2016년 6월의 공연 스케줄이다. 공연 스케줄을 보면, 거의 매일 공연이 있다. 그리고 그 공연의 대다수는 빅토르 최의 커버 공연 또는 기념 공연이다. (표에서 Цой, КИНО 같은 단어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그 시대의 '러시아 록'과 관련된 공연도 열리는데, 이 날은 6월 30일이었으니, 표의 끝에서 두 번째 줄에 있는 'Акустический бард - рок концерт (acoustic bard - rock concert)' 가 열리는 날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러시아의 '바르드 록'에 대한 콘서트인 것이다. 소비에트 시기의 문화운동이자 음악 장르였던 바르드 문화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 사실 빅토르 최의 음악도 장르적으로 뉴웨이브나 이런 것을 도입해서 전통적인 바르드와는 다르지만, 가사나 1인칭 시점, 주제의식 이런 것들이 바르드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과 많이 닮아 있다.
공터에서 노는 사람들. 신기한 것은 이 클럽에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홍대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록 콘서트를 듣는 부모를 본 적이 없는데. 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의 공연문화란 어른과 아이가 같이 즐기는 것일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이렇게 카운터가 있고, 각종 빅토르 최 관련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저 빨간 beer 문구는 한국 술집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주저하다가 들어가 보니 공연을 듣던 관객들 몇 명이 쳐다본다. 눈인사를 하니 같이 인사를 하고는 각자 보던 업무를 본다. 그리고 사장님 같으신 분이 오늘 공연이 좋다는 투의 어조로 뭐라고 쾌활하게 말하시면서 인사를 하시고 나가시는데 당연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이 날은 '바르드'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소 입장은 무료지만(정오부터 자정까지 문을 연다) 저녁에 있는 공연은 각자 입장료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이 날 입장료를 안 내고 그냥 잠시 보기만 하다 나왔다. 사장님이 하신 말은 입장료를 내란 말이었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개인적으로 저런 저음의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저 두번째 가수분이 너무 좋았음.
그나저나 이 콘서트의 음악은 기성곡일까 창작곡일까, 기성곡이라면 실제 당시 바르드 가수들의 음악일까? 좀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렇게 그냥 듣기로는 너무 좋은데.
객석에 앉아 공연을 듣는 사람들이 많았고, 카운터에서 음료를 시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상깊었던 것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음료수나 따뜻한 차를 시켜 마셨다는 것이다. 나는 클럽 캄차카를 생각할 때 남자들이 술을 마시며 노래를 듣고 시끄럽게 떠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그것보다는 친구 몇 명이 같이 와서 음악을 듣다 가는 공간의 성격이 컸다. 그리고 이 날 공연한 분들이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잘은 모르지만, 자기 공연이 끝나면 차를 시키며 다음 차례의 음악을 감상하고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고 좋아 보였다.
그리고 어떤 빅토르 최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성이 와서 카운터에서 뭔가를 사 갔는데, 두 어린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온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보통 한국 같으면 아이를 언더그라운드 바 같은 곳에 잘 데리고 가지 않고, 그리고 젊은 엄마들이 이렇게 록음악 팬으로 활동하는 문화가 한국에 흔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여성들도 록음악을 많이들 즐겨듣는데, 아이를 기르면서도 이런 문화를 즐기는 걸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좋겠다. 아님 그냥 내 머릿속에 괜한 고정관념이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고.
잠시 보다가 나왔다.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어져도 물론 밖은 아직 밝다. 사람도 많고.
넵스키 대로에서 키노의 "혈액형"을 부르는 길거리 음악가들을 발견했다.
저 어깨동무(?)하고 흥겹게 춤추는 아저씨들이 뭔가 귀엽다고 생각했음...
재즈 및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 곧 열리는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숙소에 와서 맥주를 마시고 잠.
러시아 맥주(발치카라거나 지굴리라거나)도 마셔보고 싶었는데, 나는 밀맥주를 워낙 좋아해서, 러시아어는 모르겠고 밀맥주를 찾다 보니, 그냥 1664 블랑처럼 아는 밀맥주 브랜드를 찾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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