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무엇보다도 생각지도 못한 최애 음악을 새롭게 발견해 냈을 때다. 세상엔 좋은 음악이 너무 많고, 관심을 갖고 있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단서를 통해 최애를 찾아낼 수 있다.


빅토르 최(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들어봤던 기억은 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가, 매우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의 음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은 '한국인들이 무리하게 끌어다 붙인 '동포'가 아닐까,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팬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며칠 전 처음 들어본 그의 음악이었지만 의외였다. 개인적으로 펑크에는 관심이 없어도 포스트 펑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빅토르 최의 밴드 키노는 포스트 펑크의 문법을 구사하고 있었고, 그 장르가 처음 생긴 영미권이나 서유럽을 떠나 자신의 맥락에서 포스트 펑크를 실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빅토르 최 자신은 전자기타보다도 어쿠스틱 기타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밴드의 곡을 어쿠스틱 기타로 재현하는 것 또한 정말 매혹적이었다.

또한 그가 쓴 가사 역시 대단하다.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 가사에 대한 경험이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몇 안 되는 영어와 한국어 번역을 통해 본 그의 가사에는 뚜렷한 테마가 있다. 빅토르 최의 가사에는 뚜렷한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제한된 자유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모색하려 하는 젊은이다. 그는 불합리한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지만 그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많지는 않다.


새 하루가 시작되고

차들은 이쪽저쪽으로 달리고

태양은 떠오르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한테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네

개미집이 살아 있네

누군가 개미의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신경도 쓰지 않네

그래도 결혼할 때까지는 살 거라네

그래도 죽게 되면 죽는 거라네

나는 속는 것을 싫어하지만

진실을 듣는 것도 지겹다네

안식을 찾아 헤매었지만

주위에선 내가 열심히 찾지 않았다 하네

그리고 나도 모르겠네, 도대체 몇 퍼센트가

지금 이 순간 미친 사람들인지

하지만 눈과 귀를 열어보면

몇 배나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네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지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맞서서

왜냐하면 우리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 없이는 그들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우리의 미래는 깜깜하고

우리의 과거는 지옥이거나 천국이고

주머니에 돈은 안 쌓이는데 날이 밝았으니 일어나라

(출처 [구소련인의 삶을 '개미'에 빗댄 빅토르 초이의 노래 '개미집']


록 음악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는 '자유'라고 생각하는데(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되었건) 빅토르 최는 그 자유를 압축적으로 그려낸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자유를 불합리한 사회에 맞선 정치적인 자유로 설정함으로써 자유의 정당성도 확보했다. 또한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직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신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의 자유는 순간적이지만 영원한 록의 아이콘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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