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여성편'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개 시리즈 자체가 新光三越 백화점의 콘서트 기획 일환으로 추진되고 선정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 든 사람들만이 대만 록 역사에 실릴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고 그런 건 아닙니다. 대만 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공부나 참고가 되는 정도죠.


타이완 록의 명사들 ① 廖小維 / 文夏 / 許治民 / 黃瑞豐 / 黃曉寧





廖小維 랴오샤오웨이 

서양 록 남성 가수

랴오샤오웨이는 따뜻하고 우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일찍이 [ARISTOCRATS (귀족)] 합창단을 조직해 미군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고, 이후에는 [거위 엄마(鵝媽媽)], [시간(時光)], [정점(頂點)] 등의 합창단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LP 음반, 카세트 등으로 개인 앨범을 발매했으며 영화 《鐵窗誤我二十年》의 주제곡을 녹음했다. 항상 공연 상자를 휴대하고 다녔던 랴오샤오웨이는 '즐거움과 시청 감각을 관중에게 선사하는' 프로 예술가였다.


과거 활동을 소개할 만한 영상을 찾지 못해서 일단 스킵.

랴오 선생의 모습은 다음 글(②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許治民 쉬즈민

만능 기타리스트

쉬즈민은 50년간 음악계를 종횡무진했다. 일찍이 대만방송(台視) 빅 오케스트라의 기타리스트를 담당했고, 미군 클럽과 Pub 밴드를 리드했고, 또한 여러 유명 가수의 앨범 프로듀싱과 앨범 편곡, 프로그램 제작 등을 맡아 사람들이 그를 '여주(苦瓜) 선생님'이라 불렀다. 지금까지도 기타 창작에 있어 각종 상을 받아오고 있는 여주 선생님이 말하길, "기타를 배우는 데 지름길은 없고, 매일 복습하고 매일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엔 없어요."


아래는 작년에 나온 쉬 선생의 연주 영상.








文夏 원샤

만 번 넘는 공연을 한 록 영화관

원샤는 수인(愁人)이라는 필명으로 50년대의 가장 중요한 대만어(민남어) 음반사 아시아 레코드(亞洲唱片)에서 첫 작품을 발매했다. 그 곡이 바로 바로 원샤가 작곡하고 직접 부른 《떠도는 여자(飄浪之女)》다. 대만어 영화가 무대에 오르던 시기, 원샤가 조직한 [원샤 4자매 합창단]은 하루에 극장을 세 곳씩 돌아다니고 연속으로 18번의 공연을 다녔다. 10년 동안 11편의 영화를 찍으며 만 번이 넘는 공연을 했는데 전례 없던 성황이었다.


한국에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가 있었다면, 대만에서는 원샤와 홍이펑(洪一峰)이 있었다.

첫 번째 영상은 위에서 언급된 곡 '떠도는 여자'의 녹음인데, 옛 LP의 녹음이다 보니 음질은 좋지 않다.

두 번째 영상은 글에서 언급된 '원샤 4자매 합창단(文夏四姊妹合唱團)'이다. 4자매는 실제 자매가 아니라 원샤의 부인과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소개글의 부제를 꼭 '록'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록의 정의를 넓게 잡은 건가 ㅎㅎ









黃瑞豐 Rich Huang 황루이펑

드럼 왕의 전설적인 독학의 길

황루이펑은 어릴 때부터의 독학으로 드럼을 배웠는데, 18살의 나이에 타이중의 칭취안강(清泉崗) 미군 클럽에서 드럼을 맡게 되었다. 클럽에서 훈련한 빠른 속도와 재즈 록 기저의 심오함 속에서, 그의 손을 거쳐 간 앨범이 이미 8000장을 넘는다. 녹음실이든, 교습이든,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에서 독주를 하든 대형 관현악단이나 국악단에서 객원 연주를 하든, 황루이펑은 여러 음악 영역을 넘나들 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며 드럼 왕의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래의 영상에서 들리는 선율이 많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할 텐데, 바로 가수 한명숙의 히트곡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대만 버전이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60년대 대만에서도 중국어로 번안되어 크게 히트쳤으며 지금도 60년대를 떠올릴 때 대만 사람들이 대표곡으로 꼽을 만한 유명한 곡이 되었다. (중국어 제목은 情人的黃襯衫 -연인의 노란 셔츠-)

영상은 연주에 맞추어 드럼 연주를 하고 있는 2010년의 황루이펑 선생.








황샤오닝 Martha Huang 黃曉寧

대만의 여자 엘비스 프레슬리

1968년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황샤오닝은 흰 양복을 차려입고 멋진 선글라스를 꼈다. 무대 위의 황샤오닝은 서양 팝을 불러 타이중의 미군 클럽을 풍미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대만의 여자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렀다. 지금까지 노래해오고 있는 그녀는 항상 무대를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즐긴다. 콘서트와 아끼는 록 음악 수집품을 통해서 후대의 젊은이들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록 음악의 전당에 들어서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명사' 리스트에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아래는 옛날이 아니라 최근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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