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블로그 여행 후기가 끝났다. 사실 읽는 사람은 금방 읽는 글인데 쓰는 데는 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여행 다녀온 후부터 계속 조금씩 썼고 밤도 여러 밤을 샜는데, 열흘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무리한다.


러시아는 사람들이 흔히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가깝지도 않고, 위험요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혼자 다니는 동아시아인이었다. 그래서 여행이 잘 풀릴지 가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여행을 가 보니 정말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고,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러시아가 이런 곳이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빅토르 최를 알게 된 덕분에 러시아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이렇게 직접 가 보기까지 했다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지금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긴 한데 말하자면 이웃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대만과 러시아 같은 곳은 외국이라도 같은 외국이 아니었다.

다행히 작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 둔 돈이 있어 이렇게 갈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학생의 입장에선 거금을 쓴 거긴 한데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전세계가 테러와 사건사고로 두려움에 떠는 이런 시절에 무사히 혼자 잘 다녀와서 다행이다.

멀긴 하지만 언젠가는 또 가고 싶고, 또 갈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록음악에 대해 더 심도 있는 체험을 하러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 러시아 음식도 더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고. 그 땐 러시아어도 잘 해서 가고 싶다. 

아 그리고! 그 때는 러시아가 더 개방적이고 안전한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치안을 빼면 러시아는 여행하기 굉장히 좋은 점이 많은 동네이기도 했다. 물가도 싸고(1루블=18월인 현재 상황에서)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고, 위생도 좋고.

혼자 다닌 여행이라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사람들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 여행다녔던 걸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쩐지 찡하기도 한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찡한 건 빅토르 최와 클럽 캄차카에 갔던 일을 생각하면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고, 그리고 거기서 보낸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웠던 그 일상 자체가 뭔가 신기루같다. 그래도 이렇게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정리해서 올리면서 기억을 남겨둘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잘 다녀왔으니 이제 남은 여름에는 공부를 해 봐야겠다.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면서 재미있는 주제로. 지금 빅토르 최를 가지고 공부를 할 건 아니지만 그 외에도 파고들 만한 주제는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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