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8~07.09


여행이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

상하이 푸동공항에 내려서 타이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보니,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대만에 엄청나게 큰 태풍이 온다고 7월 초부터 난리가 난 상태였다. 태풍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 날은 상하이에서 타이페이로 가는 비행기가 모두 취소되었다. 원래 8일 16시쯤 타이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야 했지만, 대신 9일 17시 비행기를 예약받았다. 그리고 이 날은 항공사가 준비한 숙소에서 하루 자게 되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었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항공사가 준비한 관광버스를 타고 숙소를 향해 간다. 이 과정에서 보조 충전기를 공항에 두고 와 버렸다. 다시 찾으러 갈 수가 없었다. 흑흑




상하이 시내의 모습을 구경했다. 아직까지 중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하루 지내면서 구경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중국 자유여행을 오려면 비자를 받아야 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비자 없이 잠깐 오면 훨씬 편리하기도 하고.




그러나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곳은 공항에서 비교적 가까운 3성급의 호텔이고 완전히 주택가에 있다. 친구가 예전에 중국동방항공을 타려다가 같은 일을 겪었을 때는 항공사에서 꽤 좋은 호텔을 준비해 줬다고 하는데 이번엔 그렇진 않았다.




사실 난 3성급 호텔도 좋다고 생각하고, 트윈베드가 있는 방에서 혼자 묵었으니 만족한다. 항공사에서 제공한 숙소라 숙박비도 안 냈고. 방도 보다시피 깔끔했다.

다만 좀 실망했던 것은 항공사 직원들과 호텔 데스크의 태도였는데, 태풍으로 발이 묶인 사람들을 안내해서 이동시킬 때도 뭔가 되게 무질서했고, 안내도 대충 했고, 모든 걸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고 너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어야 한다 느낌으로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비스를 한다기보다는 마치 바쁜 사람한테 내가 괜히 가서 저자세로 뭘 물어봐야 하는 그런 느낌. 좀 놀랐다.




숙소 주변 모습이다. 이 곳은 상하이 푸동 근처의 주택가여서 시내 관광을 나가기는 너무 멀었다. 상하이 시내까지 지하철로 편도 두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독도 덜 풀리고 해서 숙소 근처만 잠시 둘러보고 어딜 가진 않았다. 3G가 없어서 길 가면서 지도를 볼 수도 없었고.

상하이 주택가의 길거리를 구경해서 좋았고, 관광지를 가 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사실 이렇게 일반 주거지를 보는 것도 관광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대만과 이 곳이 얼마나 다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좀 달랐다. 일단 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달랐는데 가게에서 말하자면 옛날 西北風 같은 노래가 막 흘러나오고, 경극 음악을 어설프게 댄스 리믹스한 듯한 괴기스러운 노래도 들렸다. 아 이게 중국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든 것이다. 그리고 거리에 정부의 선전표어가 정말 많이 붙어 있었던 것도 인상깊었고 과연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표어의 내용은 길거리에 바나나 껍질을 버리지 맙시다, 교통질서를 잘 지킵시다 같은 생활 질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또 한편 눈에 띄었던 것은 전반적으로 위생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대만에 살면서 위생 문제를 많이 느끼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있는 느낌이었다. 선전표어가 있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호텔 식당에서 밥을 그냥 줬다. 조식만 주는 게 아니라 세 끼를 모두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맛은 그럭저럭 있었는데 여기서 두 끼를 먹고 난 후 계속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심지어 돌아온 지 열흘이 넘는 지금까지도 뭔가를 먹을 때마다 복통이 계속 느껴지고, 소화제를 먹었는데도 좀처럼 복통이 떨어지지 않는다. 밥을 돈도 안 내고 잘 먹고 나서 이렇게 안 좋은 평을 남기니 약간 미안하긴 한데, 러시아에서 여행 내내 아무 일도 없다가 이 날 이후 계속 복통이 있다 보니 여기가 문제였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밤에 숙소에선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숙소에선 흡연이 가능하긴 했는데 담배도 없었고, 핸드폰은 충전기에 문제가 있어 잘 되지 않았고, 인터넷을 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여긴 중국 영토 안이고, 구글이고 페이스북이고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라인과 카톡이 된다는 것은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서 맥주를 사 와서 티비를 보며 잠을 기다렸다. 티비 방송은 꽤 재미있었다. 

저 화면 속의 프로는 한국으로 말하면 진품명품 같은 것인데, 내가 본 일화에서는 3대째 오물청소 일을 하는 집안의 사람이 '향수'를 들고 나왔다. 이 향수는 같은 일을 하는 친척이 자신에게 선물한 것으로, 우리가 비록 더러운 일을 하지만 사실 이 일은 '향이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어로 향이 나다는 말인 香은 여러 가지 좋은 의미를 내포하는 다의어이다) 

그리고 제보자의 할아버지는 류샤오치에게 인민 훈장 같은 것을 받기도 했다는데, 인민의 모범으로서 열심히 근로하는 것은 푸세식 변기를 비우는 당신이나 중국 공산당을 지도하는 나나 마찬가지라고 하며 악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훈장과 악수 사진은 가보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중국 판 진품명품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남이 깔볼 만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지만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며 사회가 그들을 더 존경해야 한다'는 감화력 있는 결론을 내며 끝났다. 그냥 우연히 눈에 띈 이야기였을 뿐인데, 뭔가 엄청 공산주의 사회에서 나올 만한 교훈이지 않은가? 공산주의 사회의 교훈이라는 말로 타자화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런 노동의 가치와 직업의 평등의식은 어느 사회에서든 강조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는 항상 이렇게 교훈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아님 이번 에피소드가 특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 날은 이렇게 잠들었고 다음날은 조식을 먹고 또 계속 잤다. 

낮이 되자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에서 여행 정보를 찾아보면 러시아인들이 무뚝뚝하고 걸핏하면 화를 잘 낸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행 가기 전부터 많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불친절을 겪은 적은 없었다.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약간 귀찮아하는 듯 했지만(특히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귀찮아 보였다) 생각보다는 전반적으로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고, 무뚝뚝해도 알려줄 건 다 알려줬고, 그리고 정말 낯선 외국인에게 잘 웃어주고 호의적인 사람 또한 많았다.

오히려 이번 여행에서 불친절은 상하이에서 다 겪었다. 단지 하루밖에 있지 않았지만 공항과 호텔 직원들이 불친절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중국을 만만디의 나라라고 한 건지, 내가 겪은 이 날의 상하이는 빨리빨리의 도시였다. 안내도 대충 해 주면서 두세 번 물어보면 바로 화부터 내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고, 뭘 알려주는 입장이면서도 당신들이 알아서 따라와야 한다는 듯한 그 태도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겪으면서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화 게이지가 차 있는 상태라서 조금만 자기 생각과 다르면 바로 화를 표출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몇 번이나 봤다. 서비스 업종의 사람들이었는데도... 앞으로 중국에 갈 일이 분명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을 또 겪어야 한다면 별로 반갑지 않다. 아니면 내가 그 날따라 운이 없어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였으면 좋겠다.




인민폐를 여기 도착해서 좀 뽑았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뽑아서 남는 돈으로 면세점에서 담배를 샀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쨔샤이'도 좀 먹어보려고 샀다. 이 음식은 한국 중국집에선 자주 먹었지만 대만에선 접하기 힘들다. 중국 남부가 아니라 다른 지방 요리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포스팅을 쓰는 지금 이 쨔샤이를 먹고 있다.





정신없었던 상하이 일정이 끝났고 이제 정말로 대만으로 간다. 돔 끄니기에서 샀던 러시아어 교본을 이 비행기에서 봤다. 

대만에 도착하니 그립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태풍도 요란했던 소문과는 달리 타이페이에서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7월 9일 밤 기숙사에 잘 도착했고, 그리고 어느새 열흘이 흘러 이렇게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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