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6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오늘은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눕자마자 자고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11시 넘어서 일어난 것 같다. 덕분에 일어나니 호스텔 방이 텅 비어 있었고 샤워를 하러 가니 점검시간이라고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점검이 끝나길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대충 찬물로 씻긴 씻었는데 아무래도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정상 이 날 아침 이후 이틀이 넘게 씻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날은 내가 러시아에서 숙소를 잡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레닌그라드 역에 짐을 맡긴 후, 관광을 하고, 다시 레닌그라드역으로 가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침대열차에 타는 일정이었다. 침대열차를 밤에 타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리기로 한 것이다. 이 일정 결정은 항공권을 살 때 해 둔 것인데, 사실 이러지 말 걸 그랬다. 침대열차를 한번 타 보고 숙박비도 아끼자는 심산이었는데, 숙소 대신 침대열차를 택하니 씻을 수가 없었고 여러 모로 여행의 난이도가 좀더 높아졌다 -3-

그리고 이 날 타격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분명 공항에서 살 땐 비라인 유심으로 모스크바 전역에서 데이터 무제한이라고 그랬는데 왠지 모스크바로 온 이후부터 무제한이 아니라 데이터 총량이 한정되는 것으로 시스템이 바뀐 듯했다(폰에 날아오는 통신사 공지메일으로 보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이후에도 데이터는 다 써버린 채였고, 그래서 이 날과 다음 날 여행이 좀 불편했다. 생각해 보면 길가에 있는 통신사에 가서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뭔가 영어도 잘 안 통할 것 같고 왠지 귀찮고 그래서 그냥 데이터 없이 공공 와이파이를 잡아가며 다녔다.



1 레닌그라드 역

2 굴라그 박물관

3 롯데 플라자

4 빅토르 최의 벽/아르바트 거리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간다. 체크인할 때 외국인등록증인가 하는 서류를 작성한 기억은 딱히 없는데 호텔에서 자동적으로 작성을 해 줬나보다. 그런 서류를 돌려받았다.



짐을 맡기러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역에 왔다. 레닌그라드 역이라고 하면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가 있는 역이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짐 맡기는 곳이 있는데 시간에 관계없이 짐 한개당 하루에 190루블을 받았다. 저 오른쪽 구석에 있는 창구에서 사람한테 직접 맡기는 형식이다.




지하상가에 있는... 밀덕을 위한... 공간...?




역에 이런 식으로 경찰이 아주 많은데 테러방지 등을 위해 있는 것 같다. 역에 들어갈 때 짐 검사도 한다. (기계를 통과시키는 식)






역 내의 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트램을 처음 타 본다.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산 카드로 트램도 이용 가능하다(1회 50루블). 트램은 마을버스 같은 느낌인데 저렇게 차량 위에 전선(?)이 이어져 있어서 그 노선대로 가는 차량이다. 마을버스처럼 느리며 정차를 자주 한다. 제대로 굴러가고 일반 시민들도 다들 이용하고 있지만, 이 차량의 경우 낡았고 영어가 없었다(같은 트램이라도 나중에 새 차량에 타니 영어 안내방송도 있었고 차도 새 거였다).

영어안내가 없고 구글 맵도 사용할 수 없어서(데이터가 없었음) 제대로 내리려고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결국 제대로 내렸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반 모스크바 주거지역인 듯 하다.




굴라그박물관. 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라그에 대한 전시를 한 곳이다. 생증이 없어서 또 할인을 못 받았다.




이 곳은 흥미롭게도 전시관 내부의 청각적 요소에도 신경을 많이 쓴 편이었는데 예를 들면 저 위의 The sounds of prison이라는 전시가 그렇다. 말 그대로 당시 감옥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지를 청각적으로 재현해 놓은 곳인데, 특별한 소리가 있다기보단 둔탁하고 끼익거리는 소리 정도지만 소련 시절의 감옥을 청각적으로도 접하게 해 뒀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좋았다.

또한 박물관 전시실이 보통 조용한 데 비해 이곳은 무겁고 으스스한 효과음 같은 것을 틀어놓아서 특이했다. 박물관 전시 내용과 발맞춘 청각효과였다. 조명도 어두웠고. 오디오가이드는 없었고 영어 설명이 그런대로 있었다.




전시실 내부에 굴라그 수감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는 방이 있다. 이곳은 구성을 으스스하게 해 놓은 곳이었다. 전시실 내에 만들어진 작은 방 안에서 생존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으면(첫 번째 사진) 그 바로 반대편에서는 동시에 당시 소련의 선전 영상이 나온다. 그러니까 생존자 영상을 보는 동시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 소련 정부가 선전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성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수감자들의 이야기는 정말 마음아프고 무거운 이야기였긴 한데, 남한 사람들은 북한 수용소에 대해 그보다 더한 스너프 필름급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굴라그 수감자들의 이야기도 그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존자들의 수기인데 솔제니친(사진)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있다.




스탈린 사망 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 자료. 그의 장례식에 모인 군중들(오른쪽).




굴라그는 소련 체제 내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스탈린 시절에 유지되었던 곳이고, 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굴라그가 대부분 폐쇄되었다. 그 이후에도 소수의 정치범 수용소는 있었는데 스탈린 때처럼 이렇게 무자비하거나 대규모이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다. 위의 안내문에는 그 이야기가 쓰여 있고, 굴라그 수감자들이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차별이나 의심에 한동안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다.




"소비에트 당국이 너를 풀어준 데 감사해야 해." "하지만 네 쪽에서도 뭔가 위험한 행동을 했으니까 수감되었을 거야."

이 수감자가 스탈린 사후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오자 친지들이 그에게 한 말이다.




"직장을 구하러 가면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죠. 그럼 나는 내 여권을 보여줬죠. 그리고 나면 (여권에 그어진 줄 때문에) 직장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내가 회계사인데도 말이에요."

여권(신분증)에 굴라그 수감자였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증언. 굴라그에서 겪은 비인간적 대우와 억울한 체포도 문제지만 이런 이야기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을 북한 생각이 자꾸 났다.




굴라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현재의 노력에 대해 쓰여 있는 곳이고, 이로서 전시가 끝난다.

아래의 뉴스를 보면 안타깝게도 굴라그를 둘러싼 역사적 공방은 아직도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모스크바의 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기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 탄압 희생자 추모 목적 옛 소련 굴라그 복원한 러시아 단체, 소송 직면

이 박물관 설립자는 가족 전체가 굴라그에 휘말려 불운한 삶을 산 사람인데, 본인도 굴라그 생존자이고 아버지는 트로츠키 지지자였다는 이유로 굴라그에 끌려갔고, 어머니도 어떤 이유로 굴라그에 수감되었고, 본인은 그런 부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좌제의 피해자가 되어(!!!) 굴라그에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자살했고, 스탈린 사후 아버지와 본인은 풀려나서 다시 만났다. 이런 아픈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 박물관 설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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