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구리야노프 Георгий Гурьянов (1961-2013)


빅토르 초이의 밴드 <키노>의 드러머였으며, 한편으로는 8-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아트 씬의 일원이었다. 

<키노>의 해체 후에는 주로 미술가로서 활동했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과 동성애적 시선의 교차라는 테마로 주목받은 작가이다.


워크샵에서 작품과 함께. 1988년.




빅토르 초이와 '퀴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초이와 소비에트 말기 퀴어 문화의 관계는 그리 멀지 않았다. 특히 전국적인 슈퍼스타가 되기 전 레닌그라드 아트/음악 씬에서 활동하던 때의 초이는 그 자신도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공연했는데, 그가 음악적으로 영국 뉴웨이브에 영향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또한 초이 주변을 포함해서 8-90년대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언더그라운드 아트 씬에는 이성애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활동했는데, 구리야노프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던 초이는 음악가였을 뿐 아니라 미술가이기도 했으며, 구리야노프, 또 티무르 노비코프(Timur Novikov), 블라디슬라프 마미셰브-먼로(Vladislav Mamyshev-Monroe) 등과 친하게 지내며 함께 활동했다.



하늘(Небо). 2003-2004. 캔버스, 아크릴


작업실에서. 90년대 초반.


<복서(Боксеры)> 앞에서. 1991.


뱃사공들(Гребцы). 스케치. 1998.


창을 든 여성(Девушка с копьем). 1994.


아르고(Арго). 2000.



게오르기 구리야노프를 비롯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뉴 아카데미 작가들의 작업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구리야노프와 빅토르 초이, 그리고 밴드 <키노>.




빅토르 초이가 그린 게오르기 구리야노프. 1985. 종이. 콜라주.




구리야노프는 2013년 간염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슬프게도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주 전인 2013년 6월 러시아에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배반당한 것을 보여준 순간일지도...


구리야노프에 대한 영문 소개글:

Strict youth: remembering the music, art and life of Georgy Gury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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