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중가요에 대한 내 지식은 사실 여기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없다. 하지만 열심히 알아보지 않아도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를 꼽으라면 스쿨밴드형 밴드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 대중이 예전보단 덜하지만 그래도 락밴드에게 뭔가 남다른 걸 기대하는 게 있다면 대만의 유명 밴드들은 유명세만 봐도 가요 차트(노래방 차트를 포함해서)를 석권할 정도로 주류에 있고, 언더의 이미지로 홍보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학회에서 한 발표자가 타이완의 90년대 이후 락의 경향을 "The Good Boys' Rock"이라는 발제로 정리한 것을 보았는데 좋은 문구라고 생각한다. 음악의 스타일이나 홍보방식을 보면 보다 무난한, 스쿨밴드가 카피하기 좋을 것 같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좋을 것 같은 노래를 하는 밴드들이 눈에 띈다. 

물론 대만의 락은 어떠하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고, 이런 스쿨밴드형 밴드의 기류가 눈에 띄게 있으며 그런 밴드들이 굉장히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정도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이런 대형밴드 중 가장 유명한 밴드는 이견이 없이 五月天(우웨이티엔; 오월천 혹은 Mayday)이다! 우웨이티엔은 내가 요즘 대만 가요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이며, 이들의 국내 콘서트는 표를 사기가 항상 어렵고, 누구나 무난히 좋아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밴드이다. 국민OO 어쩌고 하는 수식어가 그야말로 적절하지 않을지. (일본에서는 '메이데이'로 알려져 있다고 일본인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보니, 일본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나보다.

게다가 내가 이 밴드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대만에 와서가 아니라, 중학교때 보던 핫뮤직에서였다. 그 때 중화권의 톱 밴드라고 하던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대만에 왔는데 모두가 그 밴드의 신곡과 콘서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십몇년전의 밴드가 이렇게 아직도 가요계의 중심에 있다.





십몇년간 톱으로 활동해 온 밴드답게 앨범도 정말 많이 냈고 노래도 정말 많은데, 들어보면 대체로는 소시민적이고 일상적인 정서의, 무난히 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스타일 안에서 나름 상당히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면




대만인들 노래방 레퍼토리에서 영원히 빠지지 않을 突然好想你(갑자기 네가 생각나)




실패해도 괜찮으니 우리 같이 오케이 하자는 OK啦 (그나저나 이 뮤비에서 쓰이는 컴퓨터를 보면, 이들이 대체 어느 먼 옛날부터 활동해 온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언젠가는 다시 너와 건배를 하겠다는 乾杯



정말 스쿨밴드스럽지 않은가..... 

(실제로도 스쿨밴드에서 출발한 밴드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 외에도 이들의 곡을 살펴보면 주제 면에서 범주가 (의외로) 상당히 넓어서 놀라게 된다.





최근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 히트곡 入陣曲. 뮤비를 보면 대만 지도로 시작해서 대만에서 최근에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건 여럿을 매우 빡센 시선으로 열거하고 있다. 정부조직의 도청 사건, 전경의 시위 진압 문제, 핵발전소 건설 찬반여론, 군대조직 내부의 인권문제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뮤비는 실제 최근 일어났던 여러 시위 사진의 콜라주와 함께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며("入陣去") 주먹을 높이 들고 끝난다. 유튜브에서나 주위 사람들의 곡에 대한 반응은 하나같이 좋아 보인다. 베스트 덧글이 "싫어요 누른 천몇명은 정부 사람들이냐" "이런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다니 대단하다!" 이러하다...

이쯤 되면 밴드 이름인 메이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2012년의 히트곡. 마야달력에 따르면 세상이 2012년에 망한다는 그 이야기를 주제로 해서 어떠한 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바로 그 애정만세다.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애정만세]에 대한 트리뷰트. 가사는 영화에 나오는 세 명의 인물 중 짝사랑하던 게이 청년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심지어 성별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독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목부터 '자웅동체'라니까(...) 

"나는 네가 나를 봐 줬으면 한다, 파악하려 들지 말고 그냥 즐거웠으면 한다, 나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결정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가사이다.




나는 이전에는 노래방에서 그들의 곡을 들은 인상에 따라 사람들이 우위에티엔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는데, 요즘 주위의 친구들에 영업당하던 중 밴드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한 상황이다. 스쿨밴드형 밴드를 해도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할 수가 있구나 싶고, 하긴 뻔한 노래만 했으면 그렇게 오랫동안 중심에 있을 순 없었겠지 싶다.


당분간 좀더 연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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