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일기 2016. 4. 14. 02:03

교수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어 여기 남겨 본다.

일한가요사 (History of Japanese and Korean Popular Music) 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고, 이 수업에서는 종종 시대별로 일본과 한국의 대중음악을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비교'를 하고, 서로 많이 다르다면 그냥 따로따로 각 시대의 맥락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1950년대 한국과 일본의 경우 식민지 시대보다 대중음악계의 격차가 오히려 더 심하게 벌어지는 시기인데, 이는 한국전쟁 때문이다. 한반도가 한국전쟁으로 고통받는 동안 일본은 오히려 한국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이는 당시의 대중음악만 살펴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1950년대의 일본 음반과 같은 시기의 한국 음반을 비교해 보면, 전자는 상당한 양으로 축적되어 있었고 음질도 상당히 좋은 데 비해, 한국의 50년대 음반은 정말 구하기 힘든 정도의 양에 그 음질도 듣기 힘들 정도의 잡음을 수반한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과 한반도에는 당시 모두 라틴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다. 탱고를 비롯해 차차차, 맘보 등이 엄청나게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관중을 사로잡고 있었고, 수많은 음악인들이 탱고와 맘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비교'가 가능한 점이 있는데, 4-50년대 일본에서는 수많은 음악인들이 특정 장르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탱고 밴드' '맘보 밴드'와 같은 특정 장르의 음악만을 연주하는 악단이 다양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시기의 한국 음악인들은 똑같이 탱고와 맘보, 룸바에 대해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악단은 극소수였다. 특히 미군 주둔 이후로는, 한국 악단들은 미군이 원할지도 모르는 모든 장르를 모두 연습해 놓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그때그때 연주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특정 장르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악단은 거의 없었다. 한국 악단은 모든 장르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다재다능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수님은 "보통 다양성이라고 하면 당연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죠 요즘은?" 이라는 말을 꺼내셨다.
"다양성(diversity, 多元性)은 오늘날 보통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죠.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다양성은 일종의 사치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식민의 역사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이나,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양성이란 선택지에조차 없는 먼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시기의 일본 악단이 다양하게 분화되었던 데 비해, 당시의 한국 악단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했지만 특정한 장르를 파고들지는 않았던 점에 대해 '다양성의 유무'라는 점에서 그들을 가치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성 역시 일종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이 말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는데, 항상 나는 다양성이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가까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나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 '다원성'은 떼놓을 수 없는 가치라고도 생각하고, 이 가치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다원성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때면 나는 항상 방황하곤 했는데,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비난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제3세계의 '미개인'들에게 주어진 비난이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한편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교수님 본인이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런 말을 하기 주저되지만 이는 교수님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의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공부를 한 일본인이며, 분명히 그 공부 과정에는 역사적 갈등이나 반일/반한감정을 둘러싼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단지 자국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기층 민중의 입장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대만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한(한/일) 관계와 달리, 한국과 대만 사이에는 직접적인 지배/피지배 같은 역사 문제는 물론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만과 남한 사이에는 현재 반한 감정, 일제 식민지를 둘러싼 온도 차이 같은 문제가 있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사실 때로는 나는 대만에서 공부하면서 오히려 한국에 대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같은 것이다. 

일부 대만인들(다행히도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기보단, 글을 통해 봤을 뿐이다)은 "한국은 대만과 달리 일제 시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싫어하는데, 이는 일본의 근대적 성과를 부정하는 쓸데없는 자존심일 뿐이다. 한국은 원래 그런 민족적 자존심만 내세우는 나라다"와 같은 희한한 주장을 하며 반한감정을 내세우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나는 한국인으로서 정체화하며, '일부' 대만인들의 반한/친일 역사서술에 대해 이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물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를 테지만 일본 출신의 사람이 한국을 공부할 때에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거사를 둘러싼 난처함이나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유학생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교수님이 한국에 계셨던 당시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선생님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한국에서 공부하셨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수님은 '다양성에 접근이 가능했던 일본 음악가들'뿐 아니라 '다양성을 향유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한국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뭔가 나는 잘 안 되는 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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