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타이페이 시장의 '식민 발전론' 발언, 그리고 대만 '새정치'의 모순

Kodon 2015. 2. 5. 04:52


커원저의 모토 "새정치(新政)"  (~대만의 변화는 수도에서 시작됩니다~)

안그래도 안철수와 비교당한 적이 있는데, 정말로 '새정치'를 내걸어서 이상한 우연이 되었다(...)


요즘 며칠 대만 신문 1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일이라면 역시 타이페이 시장 커원저의 '식민 발전론' 발언이다.

커원저는 지난 1월 29일 미국 언론 Foreign Policy와 가진 인터뷰에서, 

"식민 지배를 오래 받을수록 문화가 발전한다"는 발언을 하여 국내외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결국 시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며칠 후 사과하며 

"근대문명에 접촉한 시간이 오래 될수록 사회가 문명화된다는 뜻이었다, 식민지배의 어두운 면을 간과할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을 하였다.

발언 원문 자체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와 같다. (출처) 인터뷰는 중국어로 진행했고 최종 기사는 영어로 났던 것.



柯:所以我後來想、奇怪,我後來想,亞洲的歷史,4個華人地區,日本,不是,台灣、新加坡、香港跟中國,「我發現被殖民越久,果然越高級,蠻丟臉的」。

커원저: 그래서 나중에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아시아의 역사는, 중화권 4개 지방-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중국-을 보면, 식민지 지배를 오래 받을수록 더 발전하는데, 부끄러운 일이죠.

記者:嗯…市長

기자: 음... 시장님.

柯:怎樣,妳是說不能講實話是不是?(笑聲)被殖民久不是什麼壞事,妳看喔!新加坡殖民最久,所以新加坡比香港好,香港比台灣好,台灣比大陸好,這個文化、culture.....

커원저: 어때요, 그 말이 맞지 않아요? (웃음) 식민 지배가 긴 게 나쁜 일이 아니라니까요! 싱가포르가 제일 식민 지배를 오래 받았죠, 그래서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낫고, 홍콩이 대만보다 낫고, 대만이 중국보다 낫고. 이 문화, culture가...

記者:你是覺得這個真的是好事嗎?

기자: 이게 정말 좋은 일이라는 말씀이세요?

柯:不是....這是culture、culture,我跟妳講,我去過越南,我也去過大陸,雖然越南人看起來很窮,但是,我跟妳講,看到紅燈要停,看到綠燈可以走,走路靠右邊,這個沒有花20年訓練不起來。雖然我去過越南1次,去過中國18次,雖然中國的GDP比越南高,但是我都可以覺得、但是妳要問我說culture,應該還是這樣。為什麼?看到紅燈要停,看到綠燈可以走,走路靠右,妳覺得很好笑,這個要花20年才可以訓練的出來。

커원저: 아니... culture, culture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내가 베트남에 가 봤고, 중국에도 가 봤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더 가난하지만, 그 사람들은 빨간불이 되면 멈추고, 초록불이 되면 가고, 우측통행하고, 이게 20년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거든요. 제가 베트남에는 1번 가 봤고, 중국은 18번 가 봤지만, 중국의 GDP가 베트남보다 높지만, 'culture'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왜냐? 빨간 불을 보면 멈추고, 초록 불을 보면 가고, 우측통행하고, 이게 웃기다고 생각하겠지만, 20년을 훈련해야 겨우 되는 일이에요.



(기자도 귀를 의심하고 있다?)


이런 발언을 한 커원저에 대해 잠시 소개하면, 

얼마 전 민진당이 압승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타이페이 시장직에 출마하여 큰 표차로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무소속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는 국민당의 친중국적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크게 보면 민진당과 협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원래는 정치인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저명한 외과 의사였으며, 그 때문에 한국 매체는 안철수와 비교하기도 했다.

(안철수와 달리) 직설적인 화법과 소탈함으로 특히 젊은 층의 인기를 모았다.



"대만 제3의 길은 가능한가?" 

"급진적인 대만독립도 싫고 그렇다고 중국과 통일하는 것도 거부하는 주류 민의를 대변하는 동시에 진정한 정치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보면, 유명 외과의사 출신인 커원저는 제3의 길로 성공하였기에 마치 한국 대선에서의 안철수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결국 승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선 무소속 후보로 대만 수도인 타이페이 시장선거에 출사표를 낸 것, 그리고 국민당과 민진당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민진당이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양보를 얻어낸 것, 그리고 특히 각종 소규모 강연 등을 통해 바람을 일으킨 것과 인터넷매체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을 진행하고 선거 이슈들을 웹상에서 공모를 통해 추천받는 등 정치와 인터넷의 결합을 구성해낸 그의 행보는 '안철수 현상'을 경험했던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과연 대만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의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 시민 사회의 대안인 제3의 길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대만의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받던 커원저는 왜... 황당한 소리를 했는가, 에 대해 요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사인식은 커 시장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대만에서 '식민'이라고 할 때는 과거 일제의 50여년간의 대만 식민 역사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비록 현재는 고만고만한(?) 규모의 두 국가로 따로 존재하고 같은 시기에 일제 식민을 겪은 대만과 남한이지만

그 역사를 대하는 지형도는 완전히 다른데,

먼저 지금은 대만도 한 국가이고(미승인국에 가깝지만) 남한도 국가라 동등한 단위로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 한국과 대만은 역사적으로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가 어렵다.

일제 시기 이전의 한반도에 대해 생각하면, 조선이 있었고, 그 전엔 고려... 하는 식으로 나름의 독자적인 역사가 형성되어 있어

일제 시기 이전을 생각하며 일본 식민 지배가 없는 한국을 상상해 볼 가능성이라도 있는 남한에 비하면,

대만은 일제가 들어온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 전에는 거대한 청나라 제국의 변방 중의 변방에 불과했다.

또한 일제 시기 이전에 살던 다양한 민족들은 그저 부족 단위로,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 단위로 생활했을 뿐

대만을 통일된 단위로 생각하거나 그 섬의 사람들이 '대만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이 대만 섬을 전략적 요충지로, 적극적으로 제국 질서 내에 동화시킬 대상으로 보면서

그 때서야 비로소 대만의 독자적인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 이전의 대만을 생각하기 힘든 대만인들에게 일제 시기가 가진 역사적 의의는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강제한 민족주의 못지않게 저항적 민족주의의 역사 역시 깊었던 현대 남한에서 

일본 식민을 조금이라도 긍정하는 것이 제국주의적 힘에 대한 동경을 연상시켜 극우 진영과 결부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저항적 민족주의를 외치기 앞서 자신들이 어떤 민족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했던 대만에서는

국민당이 강제한 민족주의 자체가 일종의 식민주의적 정책으로 비칠 여지가 충분히 있었고,

그러므로 일제 해방 후 현대사가 진행된다는 서사에 대해, 대만인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우리가 해방되긴 했나?"

식민자가 또다른 식민자로 바뀌었을 뿐, 대만의 독자적인 역사는 장개석이 대만에 오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부터는 단순하게 말하기 상당히 어렵지만) 만약에 어차피 식민당할 거라면, 좀더 문명국가에게 지배당하자, 라는 비관주의가 

국민당에 대한 불신과 결부되어 오히려 '차라리 일본이 낫다'는 괴이한 구관이 명관... 을 형성하게 된다.

대만의 정치 지형도를 국민당-우파, 민진당과 사회비판 세력-좌파, 이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있다면

결론적으로 일제의 식민 시기에 대해 보다 덜 비판적인 쪽은 민진당과 사회비판적 세력이 되는 것이다.


전 대통령이었던 이등휘는 이미 "나는 일제 시기엔 일본인이라고 내 자신을 생각했다"고 한 바 있으며,

국민당이 해마다 강조해 기념하는 대만의 광복절을 노는 날 목록에서 빼버린 것은 민진당 정권이었다.

이런 인식은 국민당과 대만 사회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꾸준히 보여서,

예를 들면 최근의 '국가(국민당)가 준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쓰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Taiwan Bar 영상 시리즈(원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에서도,

"일제 시기가 우리에게 정말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라는, (어쩌면 잘 된 거일 수도 있다고 읽히는) 발언을 한다.

커원저의 발언은 이런 입장 유보보다 더 적극적으로 식민 지배를 긍정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분명히 이런 발언이 나온 이유가 있기는 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행히 대만의 관련 기사에 달린 덧글들도,

"어떻게 이런 노예근성이..." "믿기 어려운 발언이다" 라며 대체적으로는 해당 발언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커원저의 발언이 대만인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라고 하면 곤란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다행이다'고 한 것은, 

나 역시도 커원저의 해당 발언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우호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커 시장은 지난 일제 시기가 대만을 발전시켰다는 인식 하에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차치하더라도,

왜 다른 나라까지 들먹이면서 그 나라까지 식민 발전론의 서사 아래 끌어들이냐는 것이다.

베트남을 중국과 비교했을 때는, 베트남이 과거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아서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인지...?


또한 커원저가 말하는 '발전'의 실체가 더 명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빨간불에 멈추고 파란불에 길을 건너는 기초적인 사회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발전한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래 인용한 미국 관련 인터뷰 참조)

싱가포르가 4개 지역 중 가장 발전했다고 말할 때는 전자에는 아마 해당되겠지만, 후자라면 그다지...

그러면 커원저가 바라는 대만의 모습은 '깨끗하고 겉보기에 질서가 지켜지는' 하지만 시민의 자유 따위는 부차적인 모습인지?

만약 이렇다면,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커원저의 이상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나는 커 시장의 발언이 대만의 일부(그러나 극소수는 아닌) 좌파 세력이 가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이 곳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정권에 비판적인 교수들 중 일부는 일제 시기에 대해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대만에 많은 인프라를 제공했고(대만대학교만 해도 제국대학으로서 세웠으니)

남한에는 일제가 많은 혹독한 정책을 펼쳤지만 그에 비해 대만에는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그런데 첫번째 이유대로 일본이 대만에 인프라를 제공했고 nation-building을 해 주었으니 일제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면,

대만 본성인이 국민당을 비판할 이유는 과연 있을까?

국민당도 외래정권으로서 대만 본성인들과 충돌하며 잘못한 점이 많고, 본성인에 대한 차별도 있었지만,

국민당이 들어오면서 대만이 한 나라의 중심으로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당이 학교도 많이 세웠고, 도로도 많이 건설했고... 덕분에(?) 타이페이가 처음으로 한 나라의 실질적인 수도가 되었다.

본성인 차별정책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일제의 타이페이 제국대학에는 더 노골적인 대만인 차별이 있었다.

(중요한(?) 학과에는 일본인만 들어가고 대만인은 권력과 먼 학과에만 입학하는 등)


국민당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국민당을 외래 정권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식민지배'를 타파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중국을 식민 지배자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근본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었던 일제의 식민 지배 역시 똑같이 비판해야 논리적으로 일관되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이 모두는 아니라도 심심찮게 있다는 것이다.

읽었던 어떤 대만 학자의 논문은 이러한 모순을 비판하며, '대만의 반중국 정서는 중간에 장애가 되는 중국을 뛰어넘어

발달된 서구 문명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커 시장 역시 이런 선상에 있는 것인지...?


만약 반중국, 반국민당 정서가 식민주의의 본질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중국 대륙의 무질서함, 교육수준 낮음 등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좀더 개화된 국가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이라면

만약 언젠가 중국이 좀더 발전하고(이미 그러고 있으므로) 대만보다 더 세련되어져 다시 나타난다면

그 때는 중국이 와서 식민통치를 하면 대만을 더 발전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국회 점거 사건 등이 보여주는 '대만 민족주의'의 물결 역시도

이미 그 내부에서 역사인식의 모순이 발견된다면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라고 다소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입장이다.


해당 인터뷰 기사 전문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 문제의 식민지배 발언 외에도 양안관계나 타이완의 역사 등에 대해 이런저런 직설을 했다.

그런데 나는 식민지배 발언 외에도 이 인터뷰 때문에 커 시장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On America and Taiwan: 

I lived in the United States for a year and I’ve been thinking over the past 20 years about why the United States is a good country. Whether you like it or not, [you have to admit] its people are rather free. A cultivated nation is not about having nuclear weapons, spaceships, or high-speed rail. It is about the realization of basic social values and letting citizens live like human beings: democracy, freedom, rule of law, human rights, and care for the underprivileged. They may sound very basic, but these are the fundamental values of a society.


이런 발언... 너무 유치하지 않은지???

'A cultuvated nation is not about having nuclear weapons, spaceships, or high-speed rail"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핵무기와 우주선을 보유한 대표적인 국가가 아닌지...

커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것은 아니고 시장으로서 어떤지에 대해 외부인인 나는 모르는 게 더 많긴 하지만,

저런 발언을 봐서는 대만의 새로운 미래로 주목받던 커 시장이 실은, 중국의 촌스러움이 싫고 서구의 세련됨이 좋은 

젊은 사람들에 영합하려는 가벼운 정치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