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이(巴奈), 원주민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내다
틈이 날 때마다 괜찮은 대만산 대중음악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싶은데, 나부터도 정보가 많지 않고 요즘 시간이 잘 나지도 않아서 실천은 잘 안 되고 있다. 일단 오늘 학교를 오가며 들었던 파나이(巴奈/Panai)에 대해 써보기로...
대만의 대중음악계에는, 특히 비평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대중음악가들 중에서는 대만 원주민 출신이 꽤 많고, 이게 최근 몇 년의 유행도 아니라서 대만 원주민 가수의 계보를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대만 대중가요 앨범 베스트 200장을 선정한 리스트를 보았는데, 그 중 1, 2위를 포함해서 10위 중 4명의 가수가 원주민 출신이었다. 대만의 원주민이 전체 인구의 2% 정도이고 그 중에서도 젊은 층보다는 노년층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 역사에서 항상 소외되어 왔던 원주민 출신이 가지게 된 '유리한 입지(깊은 감정을 노래하기 적당하다는 이미지? 혹은 정치적인 정당성?)' 때문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가장 유명한 원주민 출신의 가수로는 중화권의 디바 아메이(張惠妹/A-mei)가 있고, 陳建年(Purdur), 胡德夫(Ara-kimbo), 紀曉君(Samingrad) 등도 유명하다.
파나이는 타이동(台東)출신의, 서로 다른 부족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1969년에 태어났으며, 2000년에 처음으로 낸 앨범 <泥娃娃 (진흙인형)>이 크게 성공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주로 기타 한두대로 반주할 수 있을 간결한 노래를 하는데, 대만 원주민이라는 특수성을 빼고 생각하면 조안 바에즈와 밥 딜런의 시기로부터 시작되었던, 또 한국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포크 음악의 계보가 생각난다. 가사 면에서는 내면의 침울함이나, 내적 갈등, 그리고 내적 갈등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 문제, 혹은 대만 원주민의 생활에 대해 노래한다. 상당히 직설적이기도 하다. "이 세계는 얼마나 불공평한가, 내가 원주민이기 때문에" 라는 이보다 더 직설적이고 정치적일 수 없는 가사도 있었다.
파나이의 음악이 음악적인 형식 면에서 눈에 번쩍 띄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곡이 깔끔하고 멜로디가 좋다. 그리고 그의 낮고 풍부한 목소리, 그리고 직설적이고 호소하는 가사 덕분에 그를 결코 흔한 가수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도 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의 외모도 그가 하는 음악을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파나이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높이 평가받은 것은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음악 이외에 그는 정치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원자력 문제, 메이리다오 사건 등 그는 대만의 굵직한 정치 문제에 참여하는 데도 몸을 사리지 않는데, 그런 면에서 원주민이란 정체성과 정치적인 입장이 어떻게 맞닿는지 가사와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작년에 그가 원자력 반대라는 테마로 대만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작년의 크라프트베르크 내-대만 공연에 오프닝 게스트로 서기도 했는데, 아마도 음악적인 관련성보다는 원자력 반대라는 입장이 크라프트베르크와 맞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위의 사진은 당시 상당히 앞 줄에 있던 내가 직접 찍었던 것이다!! (자랑) 그 때 파나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았다.
아래의 <流浪記(유랑기)>는 파나이의 제일 잘 알려진 곡이고, 찾아보니 여러 가수들이 공중파 TV나 오디션 프로그램까지도 포함한 다양한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러왔었다. 가사는 원주민들이 종종 겪었던 유랑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하지만 꼭 그렇게 좁게 읽지 않아도 된다.
流浪記
유랑기
나는 이렇게 산 아래의 집에 작별을 고했네
나는 정말로 쉽게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어
나는 내가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를 돌봐서 자라났네
나는 현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속임수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어떻게 해야 가면 속의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을까
내 진심이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게 해 줘
만약 언젠가 내가 더 복잡하게 변한다면
그 때도 노래할 수 있을까, 노랫소리 속의 그 한 폭의 그림을
"만약 언젠가 내가 더 복잡하게 변한다면"이라는 가사를 듣고 궁금했다. 이 노래가 쓰여졌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15년 전이었는데, 그 사이에 이 사람은 노래했던 것처럼 '더 복잡하게 변했을까'? 그런 태도가 요즘 쓴 가사에 반영되어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2000년에 발표했던 첫 앨범 후 오랜 공백기가 있었고, 작년엔 주로 반원자력 활동을 해서인지 뭔가 이름은 많이 봤지만 앨범을 낸 건 아니었다. 어서 곡을 더 내 줘...
타이페이의 시위 현장에서 <給孩子們非核家園 (아이들에게 핵이 없는 땅을 물려주자)> 라는 신곡을 부르는 작년 4월의 파나이.
가사도 정말로 간단하다. "크게 외쳐, 아이들에게 핵이 없는 땅을 물려주자"
내가 봤었던 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에서는 영상이나 사진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오프닝 공연은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