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0) 홍콩 3. 빅토리아 피크, 마담 투소 전시관, 코즈웨이 베이, 조던 야시장
3일차
숙소 건물 엘리베이터 15층에서 내리면 이런 황량한 풍경이...
건물 전체가 이런 상황이었다.
포트리스 힐.
좁은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공사중인 건물이 너무 많았다. 심시티에서 입주자가 들어왔다가 나간 건물은 회색으로 흉하게 변하는데(...)
그런 느낌의 건물이 많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홍콩 섬 중심은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거리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이 있었다. 대기오염 문제도 있었다.
밤이 되면 밟혀 있거나 아직 밟혀있지 않은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들과 함께 다녀야 했다.
거의 일주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센트럴보다도 더 익숙했던 곳이 이 포트리스힐 역 부근이었지만,
홍콩의 너무나도 화려한 야경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앞면이라면 이곳은 그 블록버스터 영화의 좁고 지저분한 뒷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숙소가 만약 신까이(新界) 같은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홍콩에 대한 내 인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Cafe de coral(大家樂)이라는 식당에서 또 죽을 시켜 먹었다. 죽이라면 뭐든 다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도 괜찮았지만, 어제의 맛집에서 나던 그 포스는 나지 않았다.
이 大家樂 말고도 이런 식의 식당 체인이 홍콩에 많은데, 끼니가 될 만한 음식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고 하루종일 시간에 맞게 메뉴가 바뀐다.
거대한 급식소 같다. 아침엔 아침메뉴가 나오고 점심엔 점심메뉴가 나오고 하는 식. 점원이 계속 메뉴판을 바꾸고 있다.
오전에는 죽이 있고 계란요리가 있고 파스타도 있고 마카로니도 있고 뭐 등등... 점심에는 점심식사하기에 맞는 메뉴로 또 바뀐다.
대략 한국돈 5천원 정도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홍콩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엔 괜찮은 가격이다. (음식에 있어서는 한국과 물가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듯) 음식의 질도 괜찮다.
홍콩에 있으면서 신기해 했던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홍콩 음식과 대만 음식 중 거의 겹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여행하면서 깨달았는데, 그래도 겹치는 것 하나는 저 왼쪽 아래의 蘿蔔糕(루어보까오) 였다.
제조과정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무를 이용해서 만든 떡 같은 음식인데.... 먹으면 무 맛은 안 나고 아주 연한 어묵을 먹는 것 같다.
역시 관광객들이 다들 간다는 빅토리아 피크에 갔다. 트램 열차를 타고 간다. 이 트램 열차가 관광명물이라 다들 오래오래 줄을 서서 탄다..
하지만 역시 아침에 오니 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었다. 일행도 없고 휴대폰 배터리도 없는데 한두시간씩 기다리고 싶진 않았다..
트램 너머로 보이는 홍콩 시내. 홍콩 시내에 위치한 언덕에 급경사로 달리는 트램열차를 타고 올라가며 시내를 감상한다. 관광지에서 다들 그렇듯 이 열차를 타는 시간 자체는 얼마 안된다.
그리고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하면 전망대 건물이 있다. 건물에서 마담 투소 박물관의 홍콩 분점을 찾을 수 있다.
동시대 유명인들의 복제 인형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곳이다.
레이디 가가의 인형이 대대적으로 전시되어 있길래 낚여서 이미 표를 산 상태였다.
규모는 상당히 작았고, 전체적으로 저런 식으로, 여행객이 같이 여행온 일행에게 마네킹과 기념사진을 찍도록 시키는 그런 곳이었다...
주걸륜, 간디, 마오쩌둥
스탈린, 히틀러, 장국영
마 여사, 비틀즈
바마 오
(저 앉아있는 애는 그냥 관광객이다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 프레디 머큐리, 마이클 잭슨
솔직히 그냥 모형일 뿐인데도 왠지 재미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가가신은 수리보수중이라며 그곳에 없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전망대 건물 끝까지 올라오면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아래에서 볼 때면 사람을 내리누르는 것 같던 건물들인데, 위에서 보니 진짜 예쁘긴 하다.
사실 이 전망대에는 보통 야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포트리스 힐 같은 시내에 있으면 고층 주상복합 빌딩만 홍콩에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저렇게 새파란 녹지가 있고, 바다도 있고, 휴양지 섬에 갈 수도 있다는 점이 좋아 보인다.
유명한 IFC 건물. 너무 근사했다. 날씨도 너무 좋았다.
그 부근의 차터 공원이라는 공원이다. 도심 한가운데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쁜 공원을 만났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공원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100%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공원의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든 사람은 동남아계 여성이었다. 다들 모여서 도시락을 까 먹고 있었다.
사실 이 차터 공원 뿐 아니라 홍콩 시내의 야외 공원은 모두 동남아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방문한 구룡공원 역시 그랬다.
일요일인 9월12일, 홍콩 중심부인 센트럴지구는 필리핀 가정부들로 가득 찼다. 그늘이라면 어디라도 자리를 깔고 길바닥에 나앉는 그들의 모습은 일요일마다 반복되는 홍콩의 풍경이다. 일하는 집의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요일에는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마땅히 갈 데도 없다. 물가가 높고 집값이 비싼 홍콩에서 필리핀 가정부들은 센트럴지구에 모여 쉬는 것이다.
정말 이런 식이다!
그리고 내가 방문했을 땐 주말이라 특히 저 기사 내용대로 공원에 다들 모여 있었지만, 평소에도 길을 가면 동남아계 인구가 많았고 때로는 히잡의 물결 속에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한국도 대만도 지방에 가면 동남아계 여성(주로 결혼이민으로 온)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대도시에서 동남아계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릴 정도는 아니다. 홍콩에서 본 동남아인들은 인구구성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만큼 많았다.
홍콩 하면 코카시안들과 중국계가 어울려서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오히려 그 '국제도시'라는 것은 코카시안들보다는 광동어를 쓰는 중국계와 각종 모국어를 쓰는 동남아계가 어울려서 '국제도시'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전체적으로 인구구성이 다양하긴 하다)
다만 나는 대부분 센트럴 부근을 비롯한 홍콩 섬 북부에 있었는데, 지역에 따라 이런 인구구성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홍콩 섬은 크게 보면 구룡반도와 홍콩섬으로 나뉘어 있고,
홍콩 섬 북부는 사무실과 관광 명소, 관광객들의 집합소인 반면 구룡반도는 미개발지역(습지 혹은 산지)이거나 대규모 베드타운인 것 같다.
의외로 홍콩에 있으면서 인종문제를 체감하게 되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를 때 항상 청소하는 이들은 동남아계 여성이었다. 그리고 저 기사에서 말하듯 공원 그늘에서 모여서 도시락 까먹고 수다떨면서 쉬는 모습을 나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막상 대규모 쇼핑몰에 들어가 보면, 상주하는 화장실 청소부 이외에는 동남아계 인구는 보기 어렵다.
특별히 고급 명품숍도 아니다. 그냥 광동어를 사용하는 일반인들 혹은 나같은 여행자들이 쇼핑몰 곳곳에 배치된 의자에서 앉아서 쉬고 있고 가끔씩 뭔가를 꺼내 먹기도 한다.... 하지만 동남아계는 잘 없다.
그냥 쉴 장소가 필요하다면 햇볕도 피할 수 있고 에어컨도 시원한 쇼핑몰에 모여서 쉬어도 되는데 왜 다 야외 공원에 모여 있는 것인지..........
리아나 내-홍콩-공연 광고를 곳곳에서 보았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사진찍었다....
이외에도 지하철역에서 Suede와 the Smashing Pumpkins 공연 홍보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코카시안 인구가 많아서인가 지하철역에까지 대대적으로 진출을)
코스웨이베이의 타임 스퀘어에 왔다. 중국어 이름은 시대광장時代廣場이었다. (중화권의 번역에 갈수록 감탄하고 있다...)
홍콩에서 가장 많이 본 광고 하나가 이 영화 Monsters University 였는데, 한국에서도 곧 상영하는지, 광고는 많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항상 이 영화 예고편을 볼 수 있었고
특히 홍콩 곳곳에 퍼져 있는 지오다노에서 이 영화와 협찬을 해서 종종 캐릭터상품을 팔고 있었다.
거기다가 심지어 타임스퀘어에서까지 이 영화의 홍보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
<몬스터 주식회사>의 속편 같은데, 원작이 홍콩에서 인기가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임스퀘어에서는 중학생들의 회화작품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좋았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뚜렷한 작품들이 대부분 상을 타고 있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코즈웨이베이에는 유명한 서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인민공사(人民公社)
이 곳은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 정부에 의해서 금지된 서적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다. 그래서 홍콩에 중국 자유관광이 허용된 이후로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가 보면 성에 관련된, 혹은 현 정세에 관련된 서적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많이 간다는 허유산(許留山) 음료 체인점을 순방해 보았다.
진짜 정신없이 맛있었다.......
사실 이 때 나는 어떤 일 때문에 내내 우울했지만 여행까지 왔는데 우울한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 술도 참았다.
(대만의 술이란 것은 너무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원래 나는 홍콩에 온 김에 대만에선 거의 없는 '생맥주'를 마시자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니면서 기분이 슬슬 나아진 나는, 나름 섬나라라는 홍콩에 온 기념으로 해산물을 먹고 기분을 더 풀고 싶어졌다.
검색을 해 보니 조던(佐敦) 야시장이라는 곳이 유명하고 해산물을 맛있게 판다고 했다. 먹으러 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날 밤 나는 기분을 상당히 잡쳤는데 그게 한국인들 때문이었다.
이 조던 야시장에 가서 사람 많은 가게에 아무데나 혼자 앉았는데, 앉고 보니까...... 이 식당의 2/3는 한국인인 거다.
무슨 "위하여!"가 저 먼 테이블에서 들려오질 않나ㅋㅋㅋㅋㅋ 빈 2인석에 앉았는데 앉고 보니 왼쪽 오른쪽 팀이 다 한국인임; ㅅㅣㅂㅏㄹ...
내가 알기로 조던 야시장이 홍콩에서 손꼽을 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다. 어떻게 된 걸까.... 왜 존나 한국인...
나도 '해산물'을 검색해서 여길 찾은 걸 보면 다들 단체로 놀러온 한국인들이 '튀긴 해산물(=안주)'과 '술'을 같이 먹을 곳을 찾은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나는 당시에 정말로 새로운 사람과 말을 트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그래서 점원한테 주문하는 정도 외에는 그때까지 아무와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인 게 들키면 괜히 민망하게 인사해야 될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은 고의적으로 계속 중국어로만 주문했다.
양 옆 팀 모두 광동어와 본토 중국어의 차이를 구분할 줄 모르는 정말 일회성 여행객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본 옆 팀들이 양 옆에서 계속 "야 현지인은 저렇게 먹나봐" "저 가리비 맛있겠다" 등을 연발하더니
급기야 나한테 현지정보를 묻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
민망해서 한국인이라는 걸 밝히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에게 현지정보를 묻던 왼쪽 팀과는 헤어지고 오른쪽 팀과 이야기하는데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학교와 주거지역과 나이를 물었다.
불쾌한 이야기를 불쾌한지 아닌지도 모르고 하는데.... 영 좋지 않았다. 차라리 외국인이었다면 말이 안 통했을 텐데.
하지만 음식 자체는 상당히 맛있었다. 불쾌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그냥 맛있게 즐겼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