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후 생활이 바빠 블로그 관리를 자주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영화 <레토Лето>의 소식은 매일같이 주시하고 있다.

사망 후 약 30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시도 끝에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빅토르 초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가 제작된다. 초이 팬으로서는 2018년이 특별한 한 해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러시아의 가장 명민하고 뛰어난 감독 중 한 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작품이라니 범작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러시아 영화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만큼 작년까지만 해도 영화에 대한 한국 기사는 거의 없었지만, 바로 이틀 뒤인 5월 8일에 열리는 올해의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Лето>, 빅토르 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그리고 주역을 맡은 한국 배우 유태오 씨 등에 관한 한국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영화를 다룬 한국 기사 몇 가지를 아래에 모아둔다. 특히 씨네21에서 최근 관련 소식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10년 무명…배우 정체성 찾는 과정서 빅토르 최 만나”
러시아 영화 ‘레토’로 칸 경쟁부문 레드카펫 밟는 한국 배우 유태오

(한국일보 / 김표향 기자)

"다음달 열리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최고상) 트로피를 두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 다투는 경쟁작들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러시아 영화가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ㆍ여름)’다. 옛 소련 시절 체제 저항의 상징이었던 한국계 록스타 빅토르 최(1962~1990)의 청년기를 그린 영화라는 사실과 함께 주인공 빅토르 최를 연기한 낯선 한국 배우 유태오(37)가 단숨에 화제에 올랐다."


<레토>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유태오 인터뷰

(씨네21 / 이화정 기자)

"감독님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배우들을 찾아다닌 걸로 알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미국, 한국 에이전시 등을 거쳐 2천명 정도를 만났다고 들었다. 나는 독일 쾰른에서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 출신이다. 배우들 중 미국, 호주, 일본 교포들은 많은데 나는 그런 면에서도 소외감이 좀 있었다. 또 유년기에는 유럽에서 동양인으로 지내면서 표현하지 못한 응어리와 배우로서, 교포로서 느끼는 불확실함 같은 것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빅토르 최에게서 내가 본 것도 그런 멜랑콜리함이었다. 빅토르 최는 한국에서도 구소련에서도 거친 로커이자 남성적이고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통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시를 좋아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그런 해석이 감독님과 통한 것 같다. 대부분 빅토르 최의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그와 외모가 비슷한 배우를 찾는데, 키릴 감독님은 빅토르 최와 영혼이 비슷한 배우를 찾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다."


<레토>,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장 방문기
칸국제영화제 초청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 러시아 촬영장

(씨네21 / 이화정 기자)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튜던트>(2016)로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진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촬영 도중, 그는 운영중인 고골극장의 공금횡령 건으로 체포된 후 아직까지 가택구금 상태다. 지난해 11월, 촬영이 중단된 이후 극비리에 남은 회차의 촬영이 이루어졌다. <씨네21>이 촬영차 러시아로 입국하는 배우 유태오와 함께 그 현장을 찾았다. 급박하게 이루어졌던 현장의 기록을 고스란히 옮긴다."

"199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28살에 요절한 러시아의 영웅, 로커 빅토르 최. 그의 이른 죽음을 두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회주의체제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힐 경우 재판에 회부되거나 활동이 정지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땅에서 표현의 자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걸까. 억측일지 모르지만 변화의 시대, 자유와 저항의 기수로 각인된 빅토르 최를 소재로 한 영화 촬영 도중, 현 푸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출자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어떤 상징처럼 다가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구속으로 촬영이 중단되자 현지에서는 빅토르 최를 연기하는 주연배우 유태오를 향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앞선 촬영 내내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가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던 터라 숙소 앞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파파라치들이 진을 쳤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니 11월의 모스크바 입국은 그 여름 이후, 남은 촬영을 위한 비밀 촬영 일정이었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현지 취재를 요청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러시아 프로덕션에서 취재를 와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레토> 프로듀서 일리야 스튜어트 - 러시아영화는 새롭게 변하고 있다

(씨네21 / 이화정 기자)

"프로듀서 일리야 스튜어트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전작 <스튜던트> 때부터 함께해왔다. 제작사 하이프필름을 통해 독특한 뮤직비디오, 광고 등을 연출하며 러시아 영화, 영상의 뉴웨이브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피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뉴웨이브,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보는 러시아영화들은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무겁지 않고 흥미로운 영화들을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젊은 스탭들, 영어 각본 등을 통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나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금 러시아의 영화산업은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영화의 첫 공개 영상이 나왔으니 아래에 첨부해 둔다.

사람들의 관심이 빅토르 초이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이 영상에서는 초이는 등장하지 않고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동료 뮤지션 마이크 나우멘코와 그의 부인이 등장한다.



영화의 세부사항이 공개되기 한참 전인 작년부터 이 영화에 대해서는 러시아 내에서 논란이 상당히 많았다. 첫번째로는 멀지 않은 시기의 실존인물이었고 아직도 열성 팬덤을 보유한 초이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떄문이며, 게다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초이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작년엔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한 명예훼손적이고 악성인 루머가 퍼지면서 팬들을 한때 격분하게 했고, 아직도 팬덤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영화에 관한 소식으로는 그런 음침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으며,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유태오 씨가 초이를 폄하하려는 목적으로 영화를 찍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영화가 전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내용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면 현재의 왜곡된 러시아 국내 반응도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최근 본 러시아 매체의 스토리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스토리 작가들은 초이의 개별적인 전기적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며, 실제 있었던 마이크 나우멘코와 그의 부인, 빅토르 초이의 삼각관계에 관한 (부인이 쓴) 짤막한 회상록에 살을 붙여 80년대 초반의 언더그라운드 록 씬의 자유와 젊음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작가들 스스로가 영화 <몽상가들>에 비유하기도.


영화는 6월 초, 또는 초이의 생일인 6월 21일에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개봉한다고 한다. 러시아 영화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또 빅토르 초이를 다룬 영화인 만큼 한국에서도 간략하게나마 개봉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랬으면...


마지막으로 짧게 언급하자면 영화의 원제인 "Лето(Leto)"는 '여름'이라는 뜻이며, 러시아어로는 '레토'보다는 '례따' 정도로 읽는다.

80년대 초반에 초이와 나우멘코 모두 'Лето'라는 노래를 부르고 녹음한 적이 있다. 둘 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의 소박하지만 멜로디가 유려한 노래로, 친한 동료 사이었던 둘이 서로 같은 제목의 노래를 지어 부르고 교환했던 것 같다.



마이크 나우멘코의 '여름'

위의 영화 클립에서 마이크 나우멘코 역의 배우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빅토르 초이의 '여름'




내용 추가:

영화의 정식 트레일러가 드디어 공개되었으니 추가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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