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찾게 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최의 벽(Стена Цоя)'

1990년 빅토르 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그를 추모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이 벽에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장소로, 아직도 아르바트 거리의 명소로 남아 있다.

이곳 뿐 아니라 벨라루스 민스크 등 다른 지역에도 이런 '초이의 벽'이 몇 개 더 있다고 한다.


사실은 이 벽은 꽤 예전부터 철거 논쟁이 있다.

일단 이 벽 주변에 모여 초이의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대는 사람들 때문에 근처 거주자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도 한다. 상주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냥 팬들이기도 하지만, 갈 곳이 딱히 없는 부랑인들인 경우도 있어서 '도시 미관'에 문제가 된다는 생각도 있고...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아주 말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아르바트 거리의 풍경과 달리, 주위 장소에서 이 곳만 유독 눈에 띈다.

그래서 벽이 철거되거나 상트페테르부르크(초이가 활동했던 주요 무대)로 옮겨진다, 재개장한다, 등의 말은 계속 있어왔지만, 이미 너무나 유명한 장소라 없애지 말자는 여론도 크기 때문에 아직은 잘 있다.

최근에 본 러시아 웹 기사에서는, "모스크바 사람들이 초이의 벽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한다"라는 기사 제목에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도 모스크바 사람인데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대체 어느 모스크바 사람 이야기인가? 나는 아니다"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관리의 문제는 있지만, 이 벽에 관한 스토리 자체가 워낙 특별하고 도시/나라 전체의 기념비적인 문화 유산인데, 그냥 없앤다는 것은 정말 너무 아쉬운 일 아닐까?

도시의 행정가 입장에서 생각해도, 각 도시마다 관광업을 위해 없는 '스토리'도 만들어내기 바쁜 지금, 이렇게 역사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벽을 없앨 필요가 굳이 있는지 모르겠다.

부랑인들이나 미관 문제가 있다면 모스크바 시에서 '문화유산' 관리를 좀 더 잘 해 주면 어떨지...


아! 그리고 모스크바 시에서 이 벽을 자꾸 없앨지 말지 하는 것은, 사실 현 러시아 정권이 초이의 인기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수년 전에는 현 러시아 여당 의원이 "빅토르 초이는 사실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지령을 받고 활동한 미국 CIA의 스파이였다"라는 괴담을 퍼뜨리기도 했고, 현재도 빅토르 초이의 곡 '변화Peremen'가 러시아 국영티비의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있다는 폭로도 얼마 전에 있었다. (자세한 출처는 다음에 추가하겠읍니다)

(CIA 썰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해당 국회의원은 원래 극단적인 반미감정으로 러시아 내에서도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광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초이를 비롯한 소련 말기의 록 뮤지션들은 80년대 당시에도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 흔히 시달리곤 했다. 이런 이야기가 2010년대의 러시아에서 다시 나왔다는 것은 러시아 정치에 있어 상징적인 징후였을 것이다.)

물론 푸틴도 공개적으로는 시대의 상징이자 아이콘으로서의 빅토르 초이를 기념하고 추모한다. 빅토르 안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넨 것을 보듯... 그리고 빅토르 초이의 팬들은 구소련권에 너무나 많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 역시 전혀 특정할 수 없다. 어쨌거나 초이는 푸틴의 시대에 산 적이 없다.




사람들은 초이가 즐겨 피웠던 담배를 선물하기도 하고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래피티는 각자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작년 7월에 왔을 때와 이번에 본 모습 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케이팝 팬이 다녀갔던 것 같은데, 벽에 뭔가를 쓰는 건 자유지만 적어도 초이와 관련이 있는 내용을 남겨야 했지 않을까? 아니면 설마 초이가 한국계라고 케이팝을 떠올렸던 걸까(...)


앞으로도 초이의 벽이 도시의 문화유산으로 오래오래 남아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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